[이라크 전쟁] 91년 걸프전은 개전 43일만에 다국적군 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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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걸프전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 점령한 것이 불씨가 되어 발발했다. 쿠웨이트를 자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해온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가 유가를 떨어뜨려 이라크 경제를 뒤흔들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공격을 단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91년 1월 15일(뉴욕시간)까지 쿠웨이트에서 철군하지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승인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다국적군 결성을 주도, 43만명의 미군을 포함해 33개국의 다국적군 78만명을 페르시아만 일대에 집결시켰다.

연합군은 최종시한이 18시간30분 경과한 1월 17일 오전 2시30분(이라크 현지시간) 대공습을 단행하면서 이라크 공격에 나섰다.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불린 걸프전의 시작이었다.

다국적군은 개전 후 1개월간 10만여회의 융단폭격으로 이라크의 주요 시설을 거의 파괴했다. 2월 24일 새벽엔 전면 지상전을 개시,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축출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지상전 개시 1백시간 만인 2월 28일 전투정지를 선언했다.

43일 만에 다국적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은 42개 사단 중 41개 사단이 무력화되고 15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패퇴했다. 다국적군은 1백25명의 전사자를 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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