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에 보내온 어느 원양 선원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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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익명을 요구하는 한 원양어선 선원이 본사에 보내온 편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국장님께. 본인은 「사모아」에 와있는 어선단의 일원입니다.(중략)
이곳 선원들의 생활실태는 노예와 다름없이 비참합니다. 구타와「테러」가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은 물론 사관들은 특별 부식에 잘 먹어도 선원들은 소금 국에 밥을 먹을 정도며 한달 노임은 1만 8천원밖에 안됩니다.
저는 사관과 사소한 언쟁 끝에 선장이하 선원 8명(선장 직속)으로부터 3시간이나 집단 폭행을 당해 「배트」 4개가 부러졌고 엉덩이 살이 터지고 코와 입으로는 이틀동안이나 피를 토했읍니다.
이튿날 병원에 가니 왼쪽 눈이 실명되다시피 했는데도 X「레이」는 커녕 알약 몇 개만 주면서 며칠 지나면 낫는다고 하니 이는 선원들을 위해 나와있는 의사인지 알 길이 없읍니다. 물론 협회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이지만 진단도 진단서도 거부하는 의사가 어디 있읍까.
또한 본선 선원 한명도 매를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괜찮다는 말만하고 진단을 거절, 외국 병원의 진단 결과 골절이 판명되자 우리 의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뿐이었읍니다.(중략) 「사모아」선원 묘지에는 수많은 선원들이 잠들어 있읍니다. 이중 매맞아 죽은 선원도 부지기수입니다. 내가 알기로도 많은 선원들이 이같이 죽어갔고 또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어 통곡할 노릇입니다. 하선하려해도 하선도 시키지 않으며 심지어는 죽은 시체를 냉동해서 싣고 다니는 배도 있읍니다.(중략)
저는 지금 일어나지도 못한 채 마침 외국사람(기술자)이 우리 배에 기관수리 왔길래 이 편지를 우송합니다.
한국의사는 진단서도 떼어주지 않아 외국의사에게 매맞은 날로부터 5일 후에 갔는데 13일간의 진단이 나와 지참중입니다. 74년10월』
이 편지의 발신지는 「11-SAMWON PO BOX 878 PAGOPAGO AMERICAN SAMOA U.S.A」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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