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래 안 된다고 써주세요" 라고 하지?

조인스랜드

입력

[황의영기자] "가만히 있던 집주인들까지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부르는 값)를 올리는 통에 매매거래가 주춤한 상황입니다. 집주인들이 자꾸 도망가지 않게 거래 잘 안 된다고 좀 써주세요."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에게 "요즘 매매시장 분위기가 어떠냐"고 묻자 돌아온 말이다. 그래도 지난해에 비해 매수 심리가 좋아지면서 거래도 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연초엔 괜찮다가 1~2주 전부터 소강상태"라며 "단기간에 호가가 뛰자 매수 대기자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강동구 둔촌주공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호가는 올랐지만 추격매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서 시장 분위기 좋다는 얘기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며 "거래 잘 된다는 보도가 결과적으로 거래를 위축시키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주택시장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매매거래도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연초엔 거래가 반짝 활기를 띠었지만 지난달 말부터 주춤해졌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주된 이유는 집주인들이 단기간에 호가를 올려 매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개포주공 1단지 전용면적 35㎡형은 올 들어 3500만원 오른 5억85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지난달 실제 거래된 가격(5억5000만원 안팎)보다 3000만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둔촌주공 3단지 전용 99㎡형도 3000만원 뛰어 7억8000만원 선이다.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게 한몫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취득세 영구 인하에 이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으로 '집값이 오르겠지'라는 기대심리도 맞물렸다.

그러나 매수 대기자들은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스러운 데다 집값 바닥을 확신하지 못해 일단 지켜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매도·매수자 힘겨루기 계속되면 집값 하락 가능성 있어

물론 집값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어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가능한 한 집을 비싸게 팔려는 집주인을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실거래는 뒷받침되지 않고 시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호가만 뛰는 현상이 마냥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집주인과 매수자의 '동상이몽'이 계속되다 보면 거래가 제대로 성사되지 않아 오히려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매수자가 없으면 집주인이 호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치다.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놓친 후에 집값이 떨어지면 집주인들이 손해를 입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재건축 단지의 경우 사업이 한 단계씩 진행될 때마다 거래가 활기를 띨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분석한다. 사업 속도가 붙게 되면 집값 상승 기대감에 매수세가 호가를 따라가면서 거래의 '동맥경화' 현상이 풀릴 것이란 논리다.

결국 열쇠는 시장이 쥐고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매도·매수자 간 힘겨루기로 인해 이제 막 살아나려는 시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직 주택시장은 회복 궤도에 안착하지 않았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