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와 불황, 그리고 실업과 저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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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실질 임금이 올해 들어 급속히 떨어지고 있어 일반 서민의 빈곤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원래「인플레」가 대중 빈곤화를 가속시킨다는 사실은 이론이 명시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처럼 노동자들과 농민의 지위가 약한 경제사회 체질에서는「인플레」의 피해가 이 부문에 널리 파급 침투되는 정도가 특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인플레」의 피해를 가급적 줄일 수 있는 경제 정책 운영이 절실한 것이나 지금의 경제동향은 불황까지 곁들여 있는 것이므로「인플레」의 강력한 억제가 실업의 일반화를 촉진시킨다는 모순을 깊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상황이다.
확실히 근자의 동향은 불황과 물가상승이라는 이중고 속에 빠져 있어 이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경지에 몰려 있는 것이며 어쩌면 택일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처지인지도 모른다.
실질 임금의 저락을 감수하는 대신 일반적인 실업의 확대를 방지하는 것이 보다 화급한 과제냐, 아니면 실업화의 도가를 무릅쓰고라도 물상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냐를 국민과 정부는 선택해야 할 난국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제관계의 조정에 있어 현실적으로는 양자의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통례이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온건한 방식이라 하겠으나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정책조정의 방향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먼저, 세금-물가 그리고 불황의 관계가 75년까지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를 객관적으로 예측함으로써 그것이 파생시킬 경제적·사회적 문젯점을 도출해서 정책결정의 틀을 제대로 잡아야 하겠음을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경제동향으로 보아 불황이 심화하고 그 때문에 실업이 계속 확대될 공산은 짙은 반면, 물가상승율이 비록 정화될 수 있다 치더라도 크게 호전될 자료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임금·물가관계를 고정적인 관념이나 또는 억제 선으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임금과 물가의 안정적인 관계를 우리 나름대로 잡아서 정책운영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을 선택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즉 임금과 물가가 악순환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어떤「룸」을 우리 나름대로 발견하고 실행하는 방식을 개발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그러한「룰」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실업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기업 측이 임금을 자발적으로 올려 줄 것이냐 하는 본질 문제가 제기된다. 임금은 노동수급 관계와 노사관계라는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실업률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측의 교섭력이 약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우기 근로자의 활동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쟁의 조정법 등 법적으로 크게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단체 교섭력을 근로자들이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임금-물가 관계의 적정「룰」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기업 측이 이를 준수할 보장은 없다는 것이 이 시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이다.
만일 정부가 종래와는 반대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할 수단은 적어도 지금의 단계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임금의 부당한 저하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서 임금-물가의 적정「룰」을 준수시키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인플레」와 불황, 그리고 실업과 실질임금의 계속적인 하락이라는 난관과 모순을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분배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룰」을 정부는 시급히 개발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가볍게 보다가는 보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것임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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