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못난 자식 낳지 말고…" 할머니·어머니께 바친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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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은 “평소에 윌 페럴, 잭 블랙 같은 할리우드 화장실 유머(노골적으로 웃기는 개그) 장르에 심취해 있다.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 영화가 내 취향이다”고 말했다. [사진 스튜디오 706]

‘수상한 그녀’(1월 22일 개봉, 황동혁 감독)의 흥행 열풍이 거세다. 개봉 20여일 만에 관객 600만 고지에 올라섰다.

개봉 초만 해도 한 주 먼저 개봉한 ‘겨울왕국’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무는가 싶더니 가족 관객이 많은 설연휴를 고비로 일일 관객 수 1, 2위를 엎치락 뒤치락 하며 흥행 뒷심을 이어가고 있다.

 70대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우연한 계기로 20대 아가씨 오두리(심은경)가 된다는 독특한 설정, 심은경의 빼어난 연기, 현대적 감각으로 편곡된 추억의 가요 등이 맞물리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나성에 가면’(원곡 세샘트리오), ‘하얀나비’(원곡 김정호) 등 극 중 인물들이 새로 부른 1970~80년대 가요도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10대부터 70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던 황동혁(44) 감독의 연출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직전까지도 그는 실화를 곧잘 영화화하는 사회파 감독으로 여겨졌다. 데뷔작 ‘마이 파더’(2007)는 주한미군으로 돌아와 친부를 찾으려는 해외 입양인의 사연을 다뤘다. 특히 ‘도가니’(2011)는 청각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다뤄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수상한 그녀’는 이와 달리 밝고 경쾌한 가족 코미디다. “본래 코미디 장르의 팬이다. 평소 농담도 많이 해서 아는 이들이 ‘넌 언제 코미디 영화 찍냐’고 묻곤 했다. 이번에 제대로 보여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 농반진반 항상 했던 말이 있다. ‘경북 청송에 사는 김씨 할머니가 봐도 재밌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

 ‘수상한 그녀’는 노인의 정서와 말투를 지닌 오두리를 통해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 뒤, 제법 가슴 뭉클한 대목을 등장시킨다. 젊어진 모습의 어머니에게 아들 반현철(성동일)이 ‘나 같은 못난 자식도 낳지 말고, 제발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사실 내가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친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셨고, 어머니도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사별했다. 고생하며 나를 키운 두 분에게 이 영화를 통해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도가니’의 성공 뒤 그에게 쏟아진 수많은 시나리오 가운데 이 작품을 각색해 연출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96세인 황 감독의 할머니는 ‘도가니’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극 중 목욕탕 장면에 잠시 등장한다.

 그의 대중적 감각은 ‘TV광’이라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도 늘 TV를 켜놨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지금도 집에 들어가면 TV와 대화를 한다(웃음). 채널을 가리지 않고 본다. 대중을 상대하는 감독이라면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데, TV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매체다.”

황동혁 감독이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왼쪽 할머니는 감독의 친할머니로, ‘도가니’에 이어 두 번째로 출연했다. [사진 CJ E&M]

 이번 영화의 결말에는 평생 오말순을 흠모한 박씨 할아버지(박인환)의 젊어진 모습으로 김수현이 깜짝 등장한다. “속편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결말이라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연출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 김수현이 캐스팅되면 속편 제작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지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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