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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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피아노」건반을 구르던「웨딩·마치」도 어느새 서슬푸른 법조문에서 적법·위법의 눈치를 보아야하게 됐다.
청첩장을 돌려도, 꽃수술을 덮어써도, 친족아닌 하객에게 밥한끼 잘못 먹여도 50만원 이하의 벌금아니면 과료야라.
작년 2월 비상각의 소산인 가정의례법에 전래의 일부 풍속이 폐습으로 꽁꽁 묶이면서 혼·상·제례는 좋든싫든 규제의 틀안으로 몰아쳤다.
69년 3월 권고규범인 가정의례 준칙을 거쳐 강제규범인 의례법이 재정되면서 일어난 의례생활의 변화는 각 가정에 무엇보다 큰 변화을 요구하는 것.
작년 6월 부친장례 때 굴건 제복을 한 서산 최용재씨 (41)가 이 의례법 위반으로 첫 벌금 5만원을 문뒤로 고색창연했던 상여행렬이 자취를 감추었고 봄·가을이면 낙엽처럼 날아와 쌓이던 고지서
청첩장도 사라지고 먹자판 잔치도 뒷구멍으로 물러나 앉았다.
예식가 또한 마찬가지의 격변상.
답례품의 금지로 서울 종로거리를 비롯, 곳곳에 즐비했던 복떡방·일용품 등 답례품상이 서리를 맞아 문을 닫았고 예식장도 청첩장 남발 금지때문에 하객수가 격감, 과거의 3백석을 1백석으로 쪼개는 등「미니」화로 종종걸음을 쳤다.
어쨌든 의례법이 시행된지 어언 1년여.
아직도 복사판 또는 먹자판 청첩장과 답례품 대신 점심값든 봉투를 돌리는 등 옛 풍속을 못 떠나는 변태의례가 엿보이긴 하지만 최근의 의례생활은 격세지감 그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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