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얼굴은 바뀌어도 요원한 「구주통합」|EEC수뇌회의 연내개최설을 계기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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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독·불 3국의 지도자가 교체되고 나서 최초의 「유럽」 공동체(EC)수뇌회의가 올해안으로 열릴 전망이다. 세나라의 정권변동이 우연히 시기를 같이했다는데서 그동안 진전없이 제자리 걸음상태에 있던 「유럽」통합에 관해 어떤 획기적인 합의가 이번 수뇌회의에서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없지않다. 이는 EEC(유럽공동시장)의 주축을 이루어온 서독·「프랑스」에서 이상주의지향형의 지도자가 물러나고 실무적인 「테크너크래트」출신지도자가 등장했다는데서 언유한듯하다.
EEC수뇌회의가 열릴 경우 항상 먼저 거론되는 것이 EEC의 정치적 통합문제이다. 그러나 EEC내부에는 통합실현에 앞서 그 전제조건이 되는 숱한 난제들이 뒤엉켜있다. EEC역내의 경제문게·통화문제등이 각국의 이해에 직결되어 대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 노동당정권이 들어서며 요구하고있는 영국EEC의 가입조건의 재협상 문제로 영·불이 심각한 대립관계에 있다. 영국의 요구는 EEC에 대한 영국의 재정부담이 과중하니 이를 덜어 달라는 것이고 「프랑스」는 그렇게 못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파동이 부채질>
영·불의 대립은 EEC가 내포하고있는 상호모순을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낸 예에 지나지 않는다. 「브란트」·「퐁피두」시대의 독·불 관계의 냉랭함이 EEC의 정치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소였음은 물론이다. 1980년을 「유럽」의 정치통합목표로 설정해놓고 이의 실현을 위해 애쓴 그동안의 노력은 진전이 없었다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다.
EEC의 정치 통합을 위해서는 통화동맹, 공동자원정책, 경제정책의 일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만은 세워 놓았으나 이의 실행방법에 관해서는 각국의 의견이 엇갈려 대체적인「일정표」마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각국의 의견이 모아지지 못한 가운데 EEC내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 73년의「에너지」파동이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파동이었다기 보다는 각국의 경제정책수립에서 대미관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갈등을 빚었다.
이른바 『대서양동맹관계의 균열』과 EEC내부의 분열을 논의하기위해 소집된 것이 73년12윌의 「코펜하겐」에서 열린 EEC수뇌회의. 이 회의는 종전처럼 1980년까지의 정치적 통합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끝났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처럼 구주통합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면서도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라든가 각국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뾰족한 방안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통합의「대의」에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역내 국가의 수뇌교체가 있을 때마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극복어려워>
더우기 공동체의 주축국인 불·서독의 수뇌로 등장한 「지스카르·데스텡」 「프랑스」대통령과「슈미트」서독수상이 상호협조적인 「데크너크래트」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기대는 요즘 한층 더해진 것도 같다.
그러나 74년 전반기 EEC회의 의장국인 서독이 수뇌회의를 제의할때 냉담하던 「프랑스」가 후반기 의장국으로 되면서 새삼 수뇌회의 개최를 주장하고 나선 동기를 가늠해 보면 구주통합을 둘러싼 두 나라의 미묘한 갈등이 과연 해소될수 있을까 의문이다.

<미묘한 불-독, 영-불 관계>
불·독관계 이상으로 미묘한 것은 영·불관계다. 「프랑스」가 늦어도 금년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국의 총선으로 야기될 결과를 아랑곳 않고 영국의 EEC 가입조건 재협상을 절대반대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있는 것은 정치적 통합전망을 한층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있다.
실상 EEC내부가 당면한 잡제는 EEC의 정치적 통합이라는 대목표이기에 앞서 오히려 이러한 1차적인 문제들이다.
수뇌회의가 열린다 할지라도 73년의 「코펜하겐」 수뇌회의 결과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 EC 수뇌들이 논의했던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와 같은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똑같은 상황에서 단지 지도자들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 만으로 통합으로의 진전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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