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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은 행복을 찾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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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주철환
PD

TV시티의 노른자위 땅은 대체로 드라마 차지다. 땅값(광고비)도 비싸고 인구밀도(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오로지 관심사는 ‘흥미로운 이야기’. 품격보다는 파격이 가격을 높인다.

 이번 주말은 감회가 좀 다르다. 미운 정 고운 정 뿌려 놓고 ‘왕가네 식구들’이 마침내 짐을 싸기 때문이다. 하기야 드라마단지 주민들에게 이별과 상봉은 익숙한 절차다. 그동안 ‘솔약국집 아들들’ ‘수상한 삼형제’도 몇 개월 기웃거리다 떠났다. (내 딸) 서영이가 떠난 후엔 이순신 장군과 동명이인 처녀도 살다 간 적이 있다. 달이 갈수록 ‘점입가경’형 가족들이 이주해 오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다.

 ‘왕가네 식구들’이 소란을 벌이자 반상회에서도 품평이 오갔다. “그 딸들 이름 들어보셨죠? 도대체 수박, 호박이 뭐래요?” “그건 약과죠. 엄마 이름은 앙금이래요. 무슨 앙금이 그렇게 남았다는 건지.” “사위들은 또 어떻고요. 위는 고민중, 아래는 허세달이랍니다.”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룰 무렵 동장이 한마디 던졌다. “그 집 가훈 보셨나요? ‘입장 바꿔 생각하자’랍니다. 각자 입장이 있으니까 좀 두고 봅시다.” 이렇듯 관대한 이웃의 입장이야말로 3대의 덕을 쌓아야 마주칠 수 있는 행운 아닐까.

 식구란 게 뭔가. 모름지기 밥상에 둘러앉아야 식구다. 이 유별난 식구들의 밥 먹는 모습은 도시의 절반이 지켜보았다. 식구가 함께 먹는 건 밥뿐이 아니다. 때 되면 나이도 공평하게 하나씩 먹는다. 나이 먹으면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그거 못한다고 욕도 대차게 먹는다. 그러다가 한바탕 가족끼리 악다구니를 쓰면 거울 안으로 이 집 가훈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입장 바꿔 생각하자’. 가족의 행복이란 밥 먹는 것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는 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집과 고집은 가장 고약한 형태의 집이다.

 북시티(책동네) 사람들은 소문만 듣고도 분개한다. “완전히 갈 데까지 갔네요. (막장에 가 본 적 없으면서도 막장이라고 규정한다.) 그쪽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답니까.” 그러나 이때야말로 입장을 바꿔 볼 차례다. 차분히 들여다보면 막장이라 단언하기가 수월치 않다. 감정의 과잉은 있지만 말세의 징표로 삼기엔 미흡하다. “도대체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이건 도를 넘은 걱정이다. 드라마 때문에 악해지는 아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나쁜 영향력으로 치자면 뉴스단지 사람들의 행실이 더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가 삶의 해법까지 제시할 필요가 있을까. 왕가네 식구들이 이사 올 때 작성한 계약서(홈페이지)엔 ‘현실적인 가족’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동서(東西) 갈등만큼이나 심각한 동서(同壻) 갈등 문제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왕가네 식구들은 나름 역할을 해낸 게 아닐까.

글=주철환 PD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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