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성고의 선택, 2321대 1의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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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국 2322개 고교 가운데 부산 부성고가 유일하게 교학사 발행 한국사 교과서를 선택했다. 이 학교 신현철 교장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단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고 전했다. 교육부의 검정 합격 판정을 받은 8개 교과서 가운데 어느 것을 채택할지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정상인데도 목에 칼이 들어올 걸 겁내야 하는 게 이 땅의 학교들이 처한 현실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출판도 안 된 상태에서 “김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은 여자깡패로 기술됐다”(민주당 배재정 의원)는 근거 없는 공격을 받았다. 전교조는 이 교과서를 채택하려던 상산고 등에 대해 “쓰레기와 오물은 굳이 체험해야만 아는 게 아니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교육부 실태조사에 나타난 것처럼 교학사를 채택하려던 한 학교엔 백주에 외부인이 침입해 “친일파”라고 소리 지르며 난동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교과서에 오류가 있다면 수정을 요구하면 된다. 학교는 정부의 검정합격 판정을 믿고 교과서를 선택할 뿐이다. 부성고는 역사 담당 교사들로 구성된 교과협의회, 학부모까지 참여한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 이처럼 학교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원하는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것이 검정체제가 보장하려는 핵심 가치다.

 전교조를 비롯한 일부 단체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를 목표로 내세우며, 이 교과서를 채택하려는 학교에 떼로 몰려가 친일 학교 운운하며 채택을 막았다. 이들은 조언이자 권고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정체제가 보장하려는 다양성의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반민주적 행태는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2321대 1은 정상이 아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나 볼 수 있을 비정상적인 비율이다. 교육부는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나타난 비정상을 서둘러 정상화해야 한다. 출판사와 저자가 사실 오류가 없는 교과서를 내놓도록 검정 과정을 촘촘히 손질해야 하며, 학교가 어떤 교과서를 선택하더라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외압 방지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