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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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구였을까 하는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미술사가들의 추측은 이렇다. 「만토바」왕비 「이자벨라」는 은근히 「이탈리아」제1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는「다·빈치」의 화필로 자기의 아름다운 초상을 남겨 두려 했다.
집요한「이자벨라」의 청에 못 이겨「레오나르도」는 「초크」로 초상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완성시키지 않은 채「만토바」를 떠났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이자벨라」로부터 완성해 달라는 독촉을 받았지만 「레오나르도」는 응해 주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어느 날 「다·빈치」는 「피렌체」에서「모나·리자」를 발견했다. 일설에는 「리자」의 초상을 부탁해 온 것이 「리자」의 남편이 아니라 그녀의 애인이었다고도 한다. 그 애인은 「다·빈치」의 「패트런」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권세가가 부탁한다고 그릴「다·빈치」는 아니었다. 그는 「리자」부인에게 몹시 끌린 것이다.
당시「리자」는 사랑하는 딸을 잃어 비탄에 젖어 있었을 때 였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상복을 입었을 때다. 그러나 「다·빈치」는 슬픔을 이겨내며 미소짓는 여성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그리려 했던 모양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이렇게 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자리」는 『인간의 미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의 미소라고 볼 수밖에 없는 기쁨에 차 있다』고 평했다.
「다·빈치」는 「피렌체」의 사람이다. 그런데 「모나·리자」가 「파리」의 「루부르」박물관에 놓여 있는 것은 그가 만년을「프랑스」국왕 「프랑솨」1세의 후대를 받아 가며 지낸 때문이다.
42년 전에「이탈리아」의 한 유리 직공이「루브르」박물관에 숨어 들어가「모나·리자」를 훔쳐낸 일이 있었다. 그는 이 명화를 조국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하려는 집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번에 그 명화가 일본에서 전시된다고 한다. 외신에 의하면 명화를 동경에 나르는데 특별 전세기에 특별 경관 8명의 경호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80kg의 금속제 용기 속에 엄중히 포장되어 있었다. 이런 비용만도 3억원이 넘는다. 보험금도 몇백만「달러」가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루브르」의 명화들에는 도난 사건도 흔하다. 1911년에「루브르」박물관에서「페니키아」의 고 미술품이 도난 된 적이 있었고, 여기엔 「피카소」까지 관련된 혐의를 받았었다.
39년에는 「앙트완·와토」의 <무관심한 젊은이>를 훔쳐낸 사람이 있었고, 61년에는 「세잔」의 그림 2점이 도난 당했었다.
동경에서의 「모나·리자」는 방탄유리 속에 갇혀 전시되며, 그 제작비는 1천5백만 원이나 된다고 한다.
거년에는 「미로」의 「비너스」상이 일본에 온 적이 있지만, 이번에도 우리는 보지 못하고 만다.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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