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바꾼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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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중국 하얼빈역에 문을 연 안중근 기념관의 건립 이면에는 한·중·일 3국의 복잡한 외교사가 얽혀 있다.

 한국 정부가 처음 안 의사의 의거를 기념할 표지석을 세워 달라고 중국에 요청한 것은 2006년이었다. 하지만 양국이 일제 침탈의 역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음에도 중국 정부는 이를 꺼렸다. 바로 일본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공산당 정권이 안정되면서 중국은 경제적 발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1979년부터 2008년까지 공적개발원조(ODA) 형태로 중국에 3조 엔이 넘는 차관을 제공했다. 저금리로 막대한 차관을 주는 일본의 반응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안 의사를 추모하려는 시도는 주로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다. 2006년 1월에는 재중 한인 사업가가 안중근 의사 숭모회와 함께 하얼빈 중심가에 높이 4.5m에 이르는 안 의사의 동상을 세웠다. 개인 자격으로 백화점에 투자한 뒤 사유지에 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외국인 동상 설립 불허 원칙을 이유로 들며 철거를 요청했고, 안 의사 동상은 10여 일 만에 백화점 안으로 옮겨졌다. 이 동상은 2009년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한국으로 왔고, 국회에 임시 전시된 뒤 부천에 자리를 잡았다.

 중·일 관계가 터닝 포인트를 맞은 건 2009~2010년 무렵이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일본을 제치고 G2 국가로 자리매김하면서다. 이 시기 양국 간 영토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경비선과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중국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과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으로 대중 압박을 계속해 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얼빈역 내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도 거부했던 중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뒤 불과 7개월 만에 기념관 건립으로 화답한 이유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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