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의료, 상생의 패러다임을 짤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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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의사협회가 14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대정부 협상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진료와 의료기관 자회사 허용 등에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결의했던 의협이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의협 비대위는 국민인 환자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협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의협의 집단휴진 결의의 배경에는 겉으로 내세운 것 말고도 경제적 문제와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동네의원은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경영난 등으로 문을 닫은 동네의원이 2012년 1625곳으로 2009년의 1487곳보다 9% 이상 늘어났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5조원의 건보 진료비 중 동네의원이 가져간 몫이 21.9%로 2004년 27.3%에 비해 5.5%포인트 감소했다는 사실도 그렇다.

 이 같은 동네의원 경영악화의 요인으로 환자들의 큰 병원 쏠림 현상과 함께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가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는 수가가 낮은 건 인정하면서도 개원의들의 비보험 진료를 문제 삼는다. 의협은 낮은 수가 때문에 불필요한 검사와 비보험 진료를 환자에게 떠안길 수밖에 없는 건보 체계부터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기준에 대한 불만도 개원의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다. 진료비 심사는 과잉 의료와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개원의들은 심평원이 의사들의 판단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만을 터뜨려 왔다.

 문제는 이런 사안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정부와 의협이 대화가 아닌 대치만 해왔다는 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측이 의료체계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부터 나눠야 한다. 이 참에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서로 불만을 털어놓고 불신을 해소하면서 의료체계 전반을 개혁해 한국 의료체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상생협의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협의체에서 건보 수가와 진료비 심사기준의 적정성 문제를 논의하고 동네의원과 큰 병원의 공존방안도 찾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원격진료의 적정성과 안전성, 의료기관 자회사 허용 문제도 이런 큰 틀 속에서 풀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국민의료의 주인은 의사나 정부가 아니라 환자인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의료체계 개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환자 단체나 건보와 관련 민간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행여나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려고 국민 부담을 과도하게 늘리려 하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결국 의료비는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