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북한보다 기후변화 더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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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 국무부에서 6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이 열렸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며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와 관련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말만으론 안 되고 행동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지난해부터 앵무새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답변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이처럼 요지부동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이 단호한 이유들 중 하나가 6일 공개됐다.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인 디펜스뉴스의 설문조사 결과다. 백악관·국방부·연방의회·방산업체 등 국방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미국과 미국의 이익에 가장 위협이 되는 요인이 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1%가 사이버 테러를 꼽았다. 그 다음이 테러(26.3%)였다.

 응답자의 14.3%는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중국을 지목했다. 7.9%는 이란을 꼽았다. 북한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고작 0.7%였다. 기후변화(5.8%)보다도 낮았다. 이 질문에 답한 전문가들이 모두 293명인 만큼 북한을 지목한 전문가 수는 20명에 불과한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5년 전과 비교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위협 정도를 묻는 질문에 ‘약해졌다’는 응답이 23.0%로 ‘강해졌다’는 응답(14.1%)보다 높았다. 전체의 62.9%는 ‘비슷하다’고 답했다. 조사 시점은 지난해 11월 14~28일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사건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장성택 사건 이후에 조사했더라면 수치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국방 전문가들이 체감하는 위협의 강도에서 북한이 중국이나 이란을 앞서기는 어렵다고 디펜스뉴스 측은 분석했다. 미국에 대한 위협을 중동과 아시아로 나눠 조사했을 때 중동 지역에선 이란이 54%로 압도적이었고, 아시아에선 중국이 47.6%로 압도적이었다. 북한은 이 조사에서도 28.8%로 중국보다 낮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 예산을 담당했던 스팀슨센터의 고든 애덤스 선임연구원은 “21세기 미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특정 국가라기보다 사이버 공격”이라며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은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을 미 국민에게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역대 미 정부에서 북한은 이란과 함께 늘 위험한 핵 도발 국가로 꼽혀 왔다. 반면에 과거 미 본토를 공격한 사례가 없는 데다 지정학적 거리 등의 이유로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위협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아시아 동맹들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을 묻는 질문엔 상당수가 북한을 지목했다. 중국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47.6%로 가장 많았으며, 북한이 28.8%로 2위였다. 사이버전쟁(12.3%)과 테러(7.9%), 기후변화(3.1%)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의 중요도도 생각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펜스뉴스의 설문조사에 답한 352명의 국방전문가들은 ‘미국의 재정 압박과 중동 내 상황을 감안했을 때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62.0%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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