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태권도 … 한국 궁금해 남아공서 날아왔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야나는 “벨라루스에서 7년 동안 훈련했던 리듬 체조보다 배운 지 석 달밖에 안 된 태권도가 몸에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머나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한국 학생과 다를 바 없이 일상을 보내는 푸른 눈의 소녀가 있다.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는 ‘상속자들’. 귀에는 ‘빅뱅’ 의 노래가 흐른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문자보다 ‘카카오톡’이 더 편하다.

 한국이 못 견디게 궁금했던 이 소녀, 결국 직접 비행기에 올랐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벨라루스 태생의 17세 소녀 르제우스카야 야나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26일 부모와 함께 휴가차 난생처음 한국을 찾았다. 10일 남아공으로 돌아가는 그를 7일 서울 명동에서 만났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야나네 가족은 3년째 프리토리아에 살고 있다.

 야나가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된 건 4년 전 벨라루스에서였다. 한국인 친구가 드라마를 보여줬다. 그는 “그후 다른 한국 드라마를 찾다가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노래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한국어까지 독학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빅뱅과 2PM부터 샤이니·FT아일랜드까지 한국 남자 아이돌 이름을 꿰고 있다. 영락없는 한국 소녀 팬의 모습이다. 좋아하는 배우는 이민호, 장근석. “이민호는 ‘시티헌터’ 때부터 팬이었는데 ‘상속자들’을 보면서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국드라마와 K팝에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태권도(사진)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에 2시간씩을 태권도장에서 보낸다. 최근에 빨간 띠를 땄고 다음 달에 검은 띠를 따는 승급 심사가 예정돼 있다. 야나는 “격파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엄살을 부렸다. 어렸을 때 배운 리듬체조 덕분인지 유연성이 좋다. 하지만 태권도 관장이 종종 야나에게 “태권도는 발레가 아니야”라고 외친단다.

 사실 그는 열네 살 때까지만 해도 벨라루스에서 촉망받는 리듬체조 선수였다. 그의 조국 벨라루스는 리듬체조 강국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버지의 외교관 부임과 함께 남아공으로 옮겨 오면서 리듬체조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그는 “리듬체조 대신 몰두할 만한 다른 운동을 찾고 있었는데 내겐 태권도가 딱 맞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으로 한국어 교재를 왕창 살 수 있었던 건 야나에게 큰 수확이다. 그는 “남아공에서는 한국어 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벨라루스에 살았을 땐 한국어 교과서를 사려고 러시아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일일이 한자를 암기해야 하는 중국어보다는 쉽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40개의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언어가 완성되다니 한국인의 창의성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올해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그는 벌써 목표 대학을 정해놨다. 러시아어권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이 가장 잘 마련돼 있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올 예정”이라며 “석사학위는 한국에서 꼭 따겠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도 한국처럼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 그래선지 한국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 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처럼 벨라루스도 2차 세계대전 동안 3분의 1 가까운 국민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도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 같아요.”

글·사진=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