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독자공격 가닥] 美 "망신 당하느니 욕먹는 게 낫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이라크전과 관련, 진퇴양난에 빠져 있던 미국이 결국 독자 군사행동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수 지지표를 못얻어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단독으로라도 전쟁을 시작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실패로 판명된 부시 외교=부시 대통령은 지난 6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라크전 결의안을 유엔 표결에 부치겠다"고 공언한 이후 약 1주일간 외교 총력전을 폈다.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유엔 안보리 15개국 지도자들뿐 아니라 일본.호주 등 주변 국가들의 지지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표결 예정일을 하루 앞둔 13일까지 미국은 안보리 비상임 국가들의 지지 확보에 실패했다. 미 CNN방송은 미 행정부가 파키스탄.기니.멕시코.칠레 등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해당 국가들은 곧바로 이를 부인하는 '외교적 대혼란'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고개 드는 비난 여론=도널드 매켄리 전 유엔대사는 "부시 외교는 장기적 플랜없이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신용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1월 '늙은 유럽'발언에 이어 영국의 전쟁 불참 가능성을 언급해 토니 블레어 총리를 궁지에 몰았던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대해 미 언론은 '갈팡질팡하는 대포알(loose cannon)'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리 해밀턴 우드로 윌슨 국제센터 소장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이 국제사회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신을 회복하려면 앞으로 몇년이 걸릴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떤 수순 밟을까=부시 행정부는 다음주 초까지 마지막 설득 외교를 펴겠지만 유엔 안보리 국가들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13일 "외교적 노력이 남아있지만 종말이 눈앞에 보인다"고 말했다. 미.영 연합군은 이라크 무장해제 시한으로 설정했던 17일 이후 언제든 전격 공습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대통령은 공습을 전후해 TV에 나와 "미국의 자위권을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할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전망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