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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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균관은 29일 공자탄강 2524년의 추기석전을 맞아 「윤리선언」을 발표했다. 격변하는 현대의 물결 속에 사회의 도덕적 규범이 혼란을 겪게 됨에 따라 우리 역사를 지켜온 한국 유학의 새로운 의미가 부각돼야 할 때라는 것이 성균관과 유도회를 중심으로 논의된 바 있다. 한국 유학의 전통을 지켜온 성균관이 29일 발표한 「윤리선언」은 그 논의의 결정이며 유교 현대화의 첫 움직임이다. 이 「윤리선언」은 성낙서 관장과 이병도 학술원 회장, 정주영 성균관 고문과 최창규 서울대 교수 등이 공동 기초했다.
인간은 존엄하다. 존엄한 인류 가운데서 우리는 한민족임을 자긍한다.
유구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상징은 빛나는 「얼」이었고 5천년 동안 우리를 지켜준 활력은 근저의 역사였다. 민족의 「얼」이 빛을 더할 때 우리의 문화는 인류 공영의 철학이 될 것이고 5천년을 살아온 근역의 활력이 재창조될 때 우리의 역사는 영광된 민족의 생명원이 될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인류로서의 안인과 민족으로서의 위기를 연결시켜야 할 주체적 사명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사의 새로운 진운을 느끼며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위에 서서 의리와 지혜로써 우리의 나아가야 할 바를 밝혀 윤리의 대원으로 삼고자한다.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 인간 존엄을 되찾는 것이 윤리의 전제이며 모든 문명의 축적은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본적 가치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의 위력이 인간의 존엄을 압도하고 인본을 떠나서 물질편중의 과학주의에 대하여 우리는 그 과학의 진로를 밝혀줄 올바른 빛으로서 우리의 인본적 윤리를 강조하는 바이다.
개인이라는 주체가 언제나 인류 창조력의 기본이며 「진정한 나」가 윤리 실천의 주체이다.
자기라는 주체를 완성시킬 수 있는 「극기」의 수양을 쌓아야 하며 이에 도달하는 윤리는 곧 공경(경)과 사랑(애)이다.
모든 속성을 다하는 「충」의 윤리는 공경이 그 근원이 되고 친친의 본성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효의 윤리는 사랑의 근본이 된다. 작게는 자기완성의 길이요. 크게는 위국충성의 길로서 5천년 전통적 「얼」사상의 윤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이라고 해서 낡은 계율을 지키고자 하지 않으며 외래 풍조라 해서 전면 배척하지 않는다.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우리 민족의 생리와 주체적 이념에 부합되며 항구적인 영광의 길을 찾기 위하여 시의에 적응되는 방법과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민족의 「얼」을 소멸하는 우리 윤리에 맞지 않는 외래적인 퇴폐풍조를 배척할 뿐이다.
효는 백행의 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의의 이전에 부부자자의 관계를 실생활에 부응되는 면에서 찾는 것이 현대윤리의 가치관이며 이 효를 넓히면 경이 되고 또 충이 되며 광의의 사랑(애)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대감각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적 윤리를 찾아 인간완성의 길을 닦고 나아가 민족사관적 견지에서 확충 발전시킬 사명을 가진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주체관적 입장에서 자기(개인)를 세우고 우리(민족)를 찾고 나아가 인류공영의 길로서 새 윤리관을 선언한다.
1973년 8월 29일
성균관장 성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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