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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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위기」를 영어로 「크라이시스」(crisis)라고 한다. 가령 석유위기의 경우 「에너지·크라이시스」라고 말한다.
「크라이시스」는 「그리스」어 「krinein」에서 비롯되었다. 그 원어의 뜻은 『결단』. 「위기」나 「결단」의 어원이 같은 것은 재미있다. 위기일수록 결단으로 극복해야한다는 「알레고리」일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맹목적인 결단을 수반하면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결단」이란 최선의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그런 뜻이 있다. 반대로 여론이 무시된 결단은 위기를 오히려 가중시킬 뿐이다. 이것은 역사가 누누이 교훈하는 바이다.
미국 행정부는 최근 「석유위기」에 대처할 정책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개토론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위기를 국민의 합의 내지는 동의에 의해 극복하려는 민주주의 방식의 한 표본이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그런 토론도 심각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토론을 뜻하는 「디스커스」(discuss)도 어원을 찾아보면 흥미 있는 암시가 있다. 이것은 「디스」(dis)와 「quatere」(라틴어)의 합성어이다. 후자의 뜻은 『흔든다』『흩어지게 한다』는 뜻. 따라서 『흔들거나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잠재적인 의미를 갖는다. 토론의 미덕은 그런 만인의 부동한 신념을 집약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신념은 마음속의 것과 행동 속의 것, 두 가지가 있다. 마음속에 신념은 말하자면 『태도 속에 있는 여론』이며 행동 속에 있는 신념은 『의견으로 표시되는 여론』이다. 따라서 『속에 있는 여론』은 잠재적이어서 멈추어 있다. 이런 여론은 의견으로 노출시킬 수단이 없거나 혹은 표명이 금압되어 있는 경우, 죽은 채로 있다. 따라서 여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배자들은 그것을 덮어두고 만다.
민주사회의 온갖 제도의 미덕은 이런 죽어있는 여론을 일깨워 「컨포미티」를 찾는데 있다. 이른바「내셔널·컨포미티」(국민적 합의)란 이런 경우를 말한다.
민주사회에서「매스·미디어」를 중요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매스·미디어」는 잠재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 속의 태도를 의견으로 모으고, 결정화하는 동기와 계기를 만들어 준다.
미국은 자신의 사회적인 동력을 절제하여 보다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국민들에게 공개토론을 스스로 요구하고 있다. 절제는 만인의 공동희생에 의해 공동이익을 추구하려는 도덕적 태도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그 내막을 알리고, 또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공정하게 모색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위기를 독선적인 결단이나 맹신만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공개토론과 같은 국민일치의 방식에 의존해서 풀어 가는 자세는 모든 나라가 배울 점이다. 적어도 민주사회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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