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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비리 잇단 무죄 … 검찰 수사 돌아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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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또 무죄였다. 저축은행 두 곳에서 세 차례에 걸쳐 8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기소돼 24일 무죄를 선고받은 박지원(71) 민주당 의원 얘기다.

 2011년 9월 출범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올 2월 해단하기까지 박 의원을 포함해 137명을 기소했다. 이 중 올 들어서만 이철규(56)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김광수(56)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김장호(55)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석현(62) 민주당 의원은 1심, 임종석(46) 전 민주당 의원은 2심에서 각각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상급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엔 서갑원(51) 전 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들의 무죄 판결문 내용은 한결같다.

 “금품을 건넨 사람의 진술에 합리성·신빙성이 없다. 검찰의 공소사실엔 이들의 진술 외에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금품을 건넨 사람이 저축은행 비리 혐의로 수사·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허위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범죄를 입증할 금융자료 등 객관적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혐의로 기소한 이른바 ‘이명박(MB) 정부 실세’ 이상득(78)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두언(56) 의원이 2심까지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자 일각에선 “검찰이 여야 균형을 맞추려고 억지로 야당 의원까지 기소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법원 판결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줄줄이 무죄라면 검찰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공직자는 수십 년간 쌓은 긍지·자부심을 잃고 가족까지 불명예 속에 고초를 겪는다. 변양호(59) 전 재정경제부 국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06년 현대차그룹 금품수수 혐의로 체포돼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까지 추가 기소됐다. 142번의 재판 끝에 2010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책 『변양호 신드롬』에서 검찰 수사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여러 번 소환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약점을 캐고, 구속 이후 기소해 6개월 동안 가둔다.”

 저축은행 비리 수사는 대검 중수부 해체 전 마지막 수사다. 지난 2일 취임한 김진태(61)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 범죄행위만 제재하는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새 출발하는 김진태호(號) 검찰은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고언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