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유래와 변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금년 어린이날은 50번째로 맞는 어린이날이다. 새싹회는 이날을 기념하여 어린이날의 유래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첫번째 어린이날은 1923넌5월1일이었다. 그 당시 천도교 소년회·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조직했는데 이 협회는 해마다 5월1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기로 결정했다. 21년 5월에 이미 조직된 천도교소년회의 지도위원이었던 방정환씨는 고한승씨 등과 함께 동경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를 첫번째 어린이날 기념식이 있던 5윌1일 하오3시를 기해 새로 발족시켰다.
23년5월1일자 동아일보는 어린이의 날 5월1일이 왔다.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떠드는 날이 돌아왔다. 지금에 우리 조선사람은 어른이나 아이가 누가 사람의 권리가 있으며 사람의 대우를 받는가. 생각하면 실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조선의 어린이여 그대들에게 복이 있으라. 조선의 부활이여 그대들에게 경성이 있으라고 쓴 후 이날 행사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이날은 2천명 소년들이 서울에서 행진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중지되었고 3시 천도교회당에서의 기념식, 선언문 낭독, 선전문 배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23년 운동협회 이름으로 발표된 선언문은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②어린이를 현제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1세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③어린이 그들이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개벽」지 주간이며 천도교소년회 지도위원이었던 김기전씨가 쓴 것으로 짐작된다.
10만장이나 찍어 서울시니 가가호호에 뿌린 선전문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등 9개항으로 된 「어른에게 드리는 글」과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등 7개항으로 된 『어린동무들에게』부탁하는 말로 되어 있었다. 이 선전문은 소년들이 「어린이날」이라 붉은 글씨로 쓴 띠를 두르고 배부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띠를 두르지 못하고 그대로 배부했다.
이날 저녁에는 302 세이상 어른들을 위한 연설회, 12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연예회 등으로 뜻 깊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25년부터는 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가 분리되어 따로 식을 올리기도 했으나 26년에는 다시 삼선 소년연합회로 통합되었고 23년부터는 일제의 압박으로 어린이날 기념식까지 중지되었다.
5월1일로 정해졌던 어린이날은 이날이 노동절이라고 해서 일제의 반대로 23년부터는 5월 첫 일요일로 옮겼다가 해방후인 55년부터 5월5일로 다시 정해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