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용 사업 … 정부에 손 벌린 지자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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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인천 간 육상 전철을 지하철로 바꾸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나 지자체 스스로 돈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하도록 촉구하겠다”는 것이어서 “실현성을 따지지 않고 단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발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 구로구와 인천시 부평구·남동구·남구 및 경기도 부천시 등 경인선이 통과하는 5개 지자체장은 지난 18일 부천시에서 공동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서울 구로역에서 인천시 도원역까지 19개 역이 걸쳐진 23.9㎞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단체장들은 “경인 전철이 주변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요즘 와서는 소음과 진동 때문에 주변 지역이 오히려 낙후돼 지하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5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비다. 자치단체장들은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정부가 이 사업을 정책과제로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자체 재원이 아니라 나랏돈으로 사업을 하게끔 졸라보겠다는 것이다.

 비슷한 발표는 앞서도 있었다. 서울 용산·동작·영등포·구로·금천구와 경기도 안양·군포시 등 7개 지자체는 서울 노량진역~경기도 군포 당정역 사이의 육상 국철 1호선 32㎞ 구간을 지하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9조6000억원이 필요한 일이다. 이들 지자체도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정부 지원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경인선이든, 국철 1호선이든 정부는 부정적이다. 국토해양부 김경욱 철도국장은 “큰 예산이 필요한 사업인데 투입 비용 대비 효과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경인선 등 지하화는 국회의원·지방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메뉴다. 2004, 2008년 18대 총선에서 상당수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선거 뒤에는 흐지부지됐다. 그저 ‘표심’을 얻기 위한 형식적 발표였던 것이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정부가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한데도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가 대형 사업 추진을 공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를 설득하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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