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송금 특검' 겁내나

중앙일보

입력

현대의 대북 5억달러 송금문제와 관련한 특검제 도입 움직임에 북한이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동결 위협에 이어 9일에는 지난 대선 기간 중 한나라당의 대북 밀사파견 주장까지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왜 특검 저지 총력 기울이나=표면적으로 북한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운다. 금강산 사업의 북측 사업자인 아태평화위(위원장 金容淳)가 중앙통신을 통해 밝혔듯 남북경협 과정에서는 "경제 논리만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특검과정에서 현대와의 구체적 거래내역이나 자금흐름이 낱낱이 드러날 경우 김정일(金正日)체제가 떠안을 부담을 우려한 때문이란 게 정부와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남측 정권이나 기업과의 비밀거래가 공개되는 전례를 만들 경우 향후 당국간 협력사업이나 민간 차원을 대상으로 한 '조달경제'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판단도 내렸을 것이란 얘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북한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며 의미를 부여할 게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특검을 다루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처리됐으면 한다"며 북한의 거친 목소리를 우려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북한의 도를 넘어선 주장에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북송금이 현대와 아태평화위 간의 민간 교류라던 북한이 지난 5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세워 "특검제 강행은 현 북남관계를 동결상태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노골적인 위협을 내놓았는데도 반박성명 하나없이 침묵한 때문이다.

◆또 불거진 대북 비밀접촉 의혹=1997년과 지난해 대선기간 한나라당과의 대북 비밀접촉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어떻게든 특검제가 현실화하는 것은 막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밀사파견 문제를 털어놓으면서도 "현재로서는 그 비밀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문을 닫은 대목에서는 추가폭로를 암시해 특검을 밀어붙이는 한나라당의 예봉을 꺾으려는 냄새가 난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과의 막후 접촉을 현대 측과의 송금문제와 등치시킴으로써 '남북간은 특수한 관계'란 주장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북측의 대선 비밀접촉 폭로에 대해 한나라당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부인하면서도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지난 대선 때 당 최고 핵심부의 분위기를 서로 탐문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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