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과 강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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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강용흘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만년을 미국의 일우에서 보내고 있었다. 70년7월 강옹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조국과의 22년만의 해후였다. 그것은 또 조국과의 마지막 고별이 되어 버렸다. 그때 강옹은 고희를 눈앞에 보면서도 백발은 은빛으로 빛나고있었다. 그래도 천수는 뿌리칠 수 없었나보다.
강옹은 「용힐·캉」으로 더 유명하다. 「용힐·캉」보다는 「더·그라스·루프」(The Grass Roof)가 더 유명할 것도 같다.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초당』이라는 우리말 번역이 우리 귀엔 따뜻한 친근감을 준다.
강옹이 고국을 떠난 것은 3·1운동 이후였다. 그는 20대가 되기도 전에 이미 세계의 항로에 올랐다. 일본에 머무르다가 미국에 건너간 것은 1929년. 그러니 반생도 넘겨, 아니 전 생애를 이역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언젠가 자신을 「코즈머폴리턴」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애향심만은 언제나 마음속 깊이 애틋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바로 『초당』이라는 소설도 그의 고향인 홍원(함남)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제가 우리를 착취한 이야기. 강옹은 만년에도 자신의 작품에 그지없이 감동하며 그것은 「레지스탕스」의 문학이었다고 회고했었다. 이 작품은 불·독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유감없이 알려진 한국작가의 창작이 되었다.
강옹이 이국에서 문학을 하게된 동기는 재미있다. 그는 미국에 건너가자 우선 언어의 부사에 직면했다. 여간 고생스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하숙방에서 책(영문)만을 읽기로 했다. 무슨 문법을 가리고, 단어를 외고…하는 그런 영독이 아니다. 그냥 모든 글을 손에 잡히는 대로 외워버리는 것이다. 영시는 마치 한시를 암송하듯이 그런 운율에 맞추어 중얼중얼 외었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일상어 아닌 시구로 대신되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깜짝 놀랐다. 강옹의 한마디, 한마디 대화는 모두 시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그는 불현듯 영국작가 「러스큰」(Rusken)의 글을 읽게되었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참되고 보람스런 순간은 길지 않다. 그밖에는 모두 산봉의 백운과 같이 덧없고 한량없는 것!』
강옹은 이 글귀를 읽고는 혼자 생각했다. 『아!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구나, 내가 알자고는, 확실한 체험이나마 써둬야겠다!』 그래서 강옹은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명망은 세계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기록된「한국」에 관한 사항들의 초고는 온통 강옹의 기술에서 비롯되었다.
근년까지 강옹이 즐거움을 찾던 일은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영역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탈고해놓은지 얼마 후에 그는 눈을 감았다. 비록 고향의 훈풍과는 멀지만. 그래도 강옹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참되고 보람찬 순간』을 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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