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메트러폴리턴·오페라·하우스」총지배인 「루돌프·빙」회고록 『오페라 5천야』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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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50년부터 1972년까지 「뉴요크」「메트러폴리턴·오페라·하우스」의 총지배인이었던 「루돌프·빙」(70)이 그의 회고록 『「오페라」의 5천야』(「더블데이」사간·4달러95센트)를 내 놓았다.
현대 「오페라」의 총 본산인 「메트러폴리턴」을 22년간이나 총지휘한 그는 이 책에서 그의 「메트러폴리턴」시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특히 서문에서 그의 뒤를 이을 「메트러폴리턴」의 총지배인으로 임명되었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스웨덴」출신의 이름난 음악지배인 「외란·옌텔레」에게 먼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쇼」는 내가 없어도 진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없어도 물론 계속된다. 우리는 모두 「오페라」사의 한 부분인 것이다』라고 그는 말하고있다.
이 책의 1장에서 3장까지는 그의 「빈」에서의 젊은 시절을 기록하고 있다.
한 음악가의 「매니저」로서의 경험, 독일의 여러 「오페라·하우스」에서 활약, 「나치즘」과의 충돌, 「에딘버러·페스티벌」 주도, 그리고 「메트러폴리턴」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기까지를 서술했다.
재치 있고 냉정하고 거만하고 때로는 비정하기도 하며 또 논쟁을 좋아하는 「루돌프」경은 『내가 「메트러폴리턴」에서 찾은 것은 모든 면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가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그의 「메트러폴리턴·오페라」가 위대한 지휘자들로 현저하게 발전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이들 중의 첫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르투로·토스카니니」이며, 또 「토머스·비첨」경, 「카를로·줄리니」「에리히·클라이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와 「에리히·클라이버」의 아들 「카를로스·클라이버」가 이 거만한 「매니저」의 편지에 회답을 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지휘자를 포기했다는 설도 있다.
「루돌프」경이 음악비평을 아주 싫어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뉴요크」의 비평가들이 「오펜바흐」나 「요한·스트라우스」를 때로는 대 「오페라·하우스」의 권위보다 아래로 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고 말하고있다.
이 『「오페라」 5천야』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그가 접한 음악가들에 대한 평가이다. 그는 고「조지·셸」에 대해서는 항상 좋지 않게 생각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조지·셸」은 그의 제l의 적이 바로 「셸」자신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천만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셸」의 제1의 적은 아닐 것』이라고까지 말했다는 것이다.
「진카·밀라노브」에 대해서는 『일찌기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말하고 또 「소프라노」「레나타·테발디」에 대해서는 『강철같이 강한 목청을 가진 여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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