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연 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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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은 토요일 우리 집 분식일 이다. 간편하고 영양 적으로도 좋으며, 또 경제적으로도 빠듯한 가계부를 움츠리지 않게 하니 더욱 좋고, 영이와 아빠도 잘 먹으니 일석삼조 라고나 할까?
아빠와 내 몫으론 식빵을 사고 영의 것은 20원짜리 빵을 샀다. 『야! 참 맛있어』하며 오물거리는 영의 입놀림을 보느라니 흐뭇한 감마저 든다. 그런데 빵을 다 먹고 난 영이가『엄마! 오늘 며칠이야?』하고 묻는다.
『10월7일. 근데 왜 그러니, 갑자기?』하고 반문하자 영은 대꾸도 않고 빵 포장지 속의 조그만 쪽지를 꺼내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다.
1학년 짜리 영은 자랑이나 하려는 듯이 읽어 갔다.
『○○빵은 순수한 설탕으로 제조된…』『응? 그것 말이구나. 그것은 언제 빵을 만들었고, 무엇으로 만들었다는 표시란다』하고 나는 선생님이나 된 듯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럼, 왜 오늘이 10월7일인데 10월9일 것을 넣었어? 에계계 이거 공갈이다. 그지?』영은 갑자기 시무룩해지고 만다. 나는 얼른 영에게서 그 쪽지를 받아 읽었다. 틀림없이 제조 일자는 10월9일이었다.
(아니 이건 유명한 ×식품 제품 아니야? 판로 유통 과정에서 며칠 걸릴 것을 약삭빠르게 계산, 미리 날짜를 앞당겨 쪽지를 집어넣었구나.) 순간 나는 얼굴이 빨게 졌고 아이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찮은 것이었지만 이제까지 그토록 믿어 왔던 제조 일자나 유효기간이란 것은 한낱 숫자 놀림이란 말인가.
그 조그만 불신감 때문에 오늘「토스트」는 유난히 맛이 없었다.
김용녀(서울 청량2동 205의577 19통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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