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팀에 묻힌 1등 가드 황성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농구팬들에게 올시즌 최고의 포인트 가드를 꼽으라면 대개 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인 강동희(LG 세이커스)나 김승현(동양 오리온스), 아니면 이상민(KCC 이지스)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에 물으면 '황.성.인'이라는 이름을 타이프할지 모른다. 적어도 기록만 놓고 보면 SK 나이츠의 리더 황성인이 올시즌 가드 중에 1등이다.

황성인은 어시스트(경기당 7.89개)와 가로채기(2.5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했다. 특히 어시스트 2위 이상민(6.94개)과는 거의 한개 차이가 난다. 팀당 5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에서 경기당 1개차는 크다. 김승현(4위.5.96개).강동희(7위.5.28개)는 더 큰 차이로 처졌다.

프로농구 간판급 가드들은 대개 MVP 출신이다. 강동희는 1997년 정규리그.플레이오프, 김승현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이상민은 1997~98,98~99시즌 정규리그 MVP다. 황성인은 이들을 제압했다.

유리한 점도 있었다. 득점왕인 리온 트리밍햄과 함께 뛰었고, 소속팀이 일찍 플레이오프 싸움에서 밀려나 부담없이 개인 기록을 쌓았다. 하지만 황성인은 99~2000시즌 서장훈(삼성 썬더스)과 함께 나이츠를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은 선수다.

전문가들은 황성인을 김인건-박수교-신동찬-유재학-이상민으로 이어져온 '가드의 산실' 연세대 가드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주자로 보기도 한다. 그의 태도에서는 명가 출신다운 자존심과 자신감이 팽팽하다.

시즌 초반 최인선 감독.김영만(LG로 이적)과 벌인 신경전은 황성인의 당찬 성격을 보여준다. 황성인은 "어시스트를 안해준다"는 김영만의 불평에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움직여라"고 받아쳤다. "슛에 욕심내지 말고 패스에 주력하라"는 최감독의 질책섞인 지적에는 "열리면 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신을 밝혔다.

황성인이 받는 두 개의 트로피는 언제나 당당한 '소신 농구'가 거둔 작은 승리다. 키(1m80㎝)가 크거나 빠르지도 않지만 머릿 속에 경기의 설계도를 그려놓고 나온 듯 득점할 수 있는 선수에게 정확하게 날아가는 그의 패스를 농구팬들은 불행히도 자주 감상하기 어려웠다. 팬들이 모이기엔 나이츠의 올시즌 성적이 너무 형편없었다.

허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