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발」에 쫓기는「남-북 대화」보도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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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따르릉…』서울∼평양간 직통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여기는 평양! 여기는 평양! 우리대표단 평양안착』이라는 역사적인 제1신이 29일 하오 2시51분 서울남산 적십자회담사무국 기자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신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1백여 내외보도진은 우르르 수화기로 몰렸고 이때부터 각 신문사의「데스크」는 철야근무. 밤새워 새 소식을 실어보내기에 바빴다.
서울∼평양 직통전화에선 판문점∼평양까지의 연도풍경, 평양거리, 만찬회 분위기, 북적 위원장 예방 등「뉴스」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사무국에 대기했던 기자들은 촌 각을 다퉈 본사에 송고 했고 전화통은 불이 튕겼다.
또 평양의 우리 기자들이 보낸 전송사진이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9일 하오 이범석 수석이 우리 기자들과 회견하는 장면이었다고 평양에서 첫「파우치」는 30일 하오 1시40분에 한적에 도착했다.

<한적 기자실>
한적 기자실은 연일 1백여 명의 내외보도진이 이리 저리 뛰며 크게 붐 빈다.
서울∼평양간 직통전화 2G회선, 「텔렉스」1회선이 설치됐다.
그러나 24개 신문·통신·방송국은 1∼3명의 기자들로 구성된 철야근무 조를 편성, 철저히 밤을 새우고 있다.
상오2시쯤 돼야 평양에서의 송 고가 뜸해진다.
이때 기자 대다수의 제의로 잠깐 눈을 붙이기로 하고 평양특파원에게 양해를 구한다.
기자들은「소파」에 앉은 채로 혹은 소속사에서 날라 온 야전침대에 기대어 잠을 자기도 한다.
꿀 같은 단잠도 일순.
새벽 5시가 채 못돼 다시 평양에서 기사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이때 기자들간엔『평양특파원은 밤잠도 없느냐』는「조크」도 오가고.
조금 후 한적 본부 측에서 보도진에게「코피」와「콜라」들을 제공, 까 실한 입안을 축인다. 이렇게 바쁜 나날은 한적 대표단이 돌아오는 오는 9월2일까지 계속될 것.

<전송사진>
국내외 시선이 평양으로 쏠린 29일.
이날 하오 6시55분 서울 세종로 동양통신사 6층 연락 국 전송사진 수상기 주위에서『야! 됐다』는 환성이 터졌다.
평양특파원이 촬영한 첫 사진이 들어온 것이었다.
손으로 받아내는 기술부장 이경상씨(43)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공동취재반이 평양에 준비해간 이동식 암실에서 촬영한「필름」을 현상, 인화하여 휴대용 송상기 S-16에 넣으면 7분만에 동양통신 수상기에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들어온 사진은 즉각 신문·통신사·외국 통신사 등에 나른다.
동시에 공동통신사에 송상되어 전 일본「매스컴」과 AP·UPI등을 통해 평양의 역사적 장면이 세계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같이 보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데도 평양특파원들은『기사와 사진이 빠지지 않고 잘 취급됐느냐』고 물어오기도 했고 마감시간에 쫓기는 각 신문사와 통신에서는『사진이 도착 했느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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