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손회사 지분 규제가 막은 2조310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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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JX사와 합작으로 울산에 공장을 짓고 있는 SK종합화학은 SK그룹 지주회사인 ㈜SK 자회사(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다. 이 손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또 자회사를 세우면 ㈜SK의 증손회사가 되는데, 이 증손회사의 지분은 손자회사가 100% 보유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이 규제는 지주회사의 대주주가 추가 출자를 하지 않고도 지배회사를 늘려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재계는 이 규제에 대해 해외자본 투자를 막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 규제를 푸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010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후 민주당의 반대로 후속절차 진행이 무산됐다. SK 입장에서 일본 자본의 투자 약속은 받아놨는데, 이를 허용해 줄 법안은 중도 폐기된 것이다. SK 관계자는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것을 보고 시장 전망을 고려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며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로 법안이 폐기되는 일이 생기면 기업은 선제적인 투자를 하기가 어려워지고 결국 투자 유치 경쟁에서 우리나라 회사들이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약은 맺어졌지만 규제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는 2조3100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외국인 투자에 한해 증손회사에도 50%까지 출자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등은 대기업이 증손회사를 설립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한다. 실제 SK 사례에서는 SK종합화학이 아닌 ㈜SK나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를 세우는 형식으로 투자를 끌어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SK 관계자는 “투자자인 JX는 SK종합화학이 갖고 있는 생산 전문성을 보고 이 회사와 공동 출자 회사를 세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증손회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투자 자체가 무산된다”고 반박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경제 주체가 자율적으로 투자 형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게 제도의 기본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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