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특검법 '先협상 後거부권'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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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일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정대철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청와대 만찬에서는 특검법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민주당의 의견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정균환 원내총무는 "특검법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헌법적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광옥.김태랑 최고위원 등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들은 모두 구주류다.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이 타격을 받을 게 뻔한 특검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반면 이상수 사무총장.정세균 정책위의장 등 신주류는 '조건부 거부권론'을 폈다. "특검법의 수사범위.기간 등을 놓고 야당과 협상을 해보고 안되면 추후 진상규명을 전제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야관계 악화와 비판여론 고조로 盧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견해다.

구주류인 한화갑 전 대표도 "대야(對野)관계를 고려하면 조건부 거부권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盧대통령은 "민주당에선 외교적 신뢰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한나라당도 국익을 고려해 정치적 타협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11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과 만나는 자리에서 국익을 강조하며 특검법 수정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특검법 수정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朴대행은 9일 "국회 결정을 존중하는 게 민주적인 대통령의 의무"라며 "특검법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盧대통령과 朴대행의 회동에서 절충점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회담이 결렬되면 盧대통령은 거부권 문제를 놓고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거부권 행사 마감시한은 오는 14일이다.

민주당에선 "한나라당과의 협상이 잘 안될 경우 盧대통령은 조건부든 아니든 결국 거부권 카드를 꺼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朴대행을 만나는 것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겠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신주류 핵심인 김원기 고문이 이날 만찬에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거부권 행사의)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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