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미국이 확 달라졌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확인하는 데 지난 두 주일은 결코 짧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쉽지않은 선택을 강요받았던 역사적 순간들이 기억 속에 있지만 요즘처럼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거론돼 우리를 불안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1994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대북 공격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은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릅니다. 워싱턴에선 북한 핵 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또 북한의 행보 역시 충돌의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5년여 전 금융위기로 온 국민이 힘든 결정에 따라야 했지만 이젠 전쟁이라고 하는 생각조차 피하고 싶은 상황을 놓고 고민해야 할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한반도 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우리 관리들의 주장이 근거도 있고 또 믿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과 주변의 참모들을 두루 만나며 받은 인상은 우리의 희망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싶어 안타깝습니다. 혹시라도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대통령께서 미리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미국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미국의 역사가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미국은 달라졌습니다. 미국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바깥을 보는 미국인들의 생각도 크게 변했습니다.

게다가 부시란 대통령의 인물 됨됨이가 그 변화를 극단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결코 가볍게 보아선 안됩니다.

세상을 선과 악의 양분법으로 보는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가까운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에 동참하지 않는 주변의 조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지도자입니다. 이런 대통령을 우리 국익에 맞게 대하는 방법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의 고심이 필요합니다.

논리만 갖고 설득하기 어려운 상대가 부시 대통령입니다. 때로는 달래는 기술과 여유가 요구됩니다. 정상회담에서 마주칠 상대입니다만 만나 보고 상대를 평가하기엔 시간이 촉박합니다. 대(對)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북한을 손보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 나오는 것이 백악관 주변의 분위기입니다.

둘째, 한.미 동맹관계는 변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충실하게 반영한 방향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국익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이 우리 바람에 그대로 따를 것이란 기대는 과욕입니다. 또 주한미군의 재배치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한국 내 반미감정입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은 반미하는 나라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의 동요 조짐이 보입니다. 방한을 취소하는 미국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미국의 행태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대통령의 발언이 일부 국민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경제엔 타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욱이 미국에 대드는 식의 우리 외교 행태나 지도자의 발언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측에 근접하게 할 것이란 교과서적인 논리는 요즘 워싱턴 분위기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

또 미국에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해서 평양이 서울에 호의적으로 나올 것이라 판단한다면 우리가 안보를 의지하는 동맹국의 마음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결국 북한으로부터도 무시당하는 결과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외교 분야에서의 변화와 개혁은 애초 국익을 달리한 상대와의 싸움이란 점에서 국내개혁과 같을 수 없습니다. 또 대북관계는 대외정책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처지입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국민이 안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길정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