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리포트] 시장경제 고민 헤아리는 정부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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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즈음 "경제 괜찮은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새 정부가 지나치게 진보적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에 나는 "별 문제 없을 것이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간 인물들이 급진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비교적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들이다.

또 설사 과격한 생각이 있어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그 생각대로 밀어붙이기는 힘들게다"라고 설명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불안한 게 없는 건 아니다.

'참여'정부 첫 인사에서 가장 튀는 점은 시장 참여자(market player)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한 것이다(민간기업 출신이 한 명 있으나, 석연치 않은 개인 처신 문제로 장관으로서의 권위가 만신창이가 됐으니 여기서는 제하자 ). 대부분이 공무원.교수 아니면 변호사다.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렇다고 새 정부가 시장경제에 반(反)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 반대다. 새 정부의 경제관련 장관이나 청와대 보좌진은 나름대로 시장경제에 관해 일가견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입과 머리로만 다룰 뿐 몸으로 체험하는 직종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학자.관료.법조인이 서로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고시이든 학위이든 일단 자격증만 따고 나면 평생의 철밥통이 보장되는 거다. 이들은 살면서, 또 살기 위해 경쟁을 제대로 치러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시장에 의해 제 가치를 늘 평가받아야 하는 민간인의 두려움을 알기 힘들다.

또 이들은 무식한 학생 위에, 무력한 민간 위에, 혹은 무지한 고객 위에 군림하며 지낸다. 자기네 생각이 옳아서 '아랫것'들이 가만히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뼈를 깎는 남의 개혁'은 잘 몰아붙여도 '자기의 개혁'을 당하는 아픔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규제와 무지한 관료 때문에 민간이 느끼는 서러움을 공감하기를 이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공급 과잉이다' 하면 얼른 '빅딜'이 생각나고 '대기업 부채가 문제다' 하면 '부채비율 2백%로 감축'생각부터 떠올리는 게 다 이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새 정부의 첫 내각에 시장경제가 떨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와서 판을 다시 짜자는 게 아니다. 제발 시장경제의 생태가 어떤 것인지, 민간경제의 고민과 바람이 뭔지 애써 헤아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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