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서 싹트는 「전위」…「푸라우다」지, 사회적 「리얼리즘」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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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에서의 예술분야에 대한 비판 가운데 「전위」를 찬양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 「근대」란 말의 연대기적 의미만이 매이는 보수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시대조류에 따라 차츰 사태는 변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언론의 비판대상을 초월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던 「볼쇼이·발레」가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며 그것도 「레퍼터리」의 빈곤이란 명목으로 비판되었던 것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비판은 저명한 「발레리나」출신 비평가인 76세의 「빅토리나·크리거」로부터 나온 것.
「크리거」여사는 『「볼쇼이」의 「포스터」 등은 다양하다 할 수 없다』고 전제, 『오늘은 「백조의 호수」, 내일은「지젤」도 며칠 뒤에는 다시 「백조의 호수」와 「지젤」이다. 그리고 드물게 「사랑의 전설」이나 「로미오와 줄리에트」가 상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리거」여사에 의하면 「모스크바」 사람들이 「하차투리안」음악의 「스파르타쿠스」, 「블라소프」의 「아셀」,「슬로님스키」의 「이카루스」와 같은 최근의 작품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으며 설혹 있다 해도 목록의 맨 마지막에 이들 작품이 끼여 있다는 것.
그러나 실상 이들 작품이 목록 끝머리에 끼여 있는 것은 아니다. 「볼쇼이」는 어쩌다 『돈·키호테』를 상연하지만 『호두까기인형』 『작은 곱사등이 말』 「로디은·셰드린」의 신작 『카르멘』은 거의 상연「리스트」에 넣지도 않는다.
「크리거」의 기본적 불평은 「레퍼터리」의 고정에 있는 것보다 배역의 다양성이 결핍되었다는 사실에도 있다. 「발레리나」의 재능에 새로운 특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 가령 『백조의 호수』를 춘 다음엔 사회주의혁명정신을 진작시킬만한 『번개의 길』을 추어야겠다는 것이다.「볼쇼이」의 고전취향을 비판한 「프라우다」의 주장은 전위적 작품으로서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이 강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뉴요크·타임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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