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현실로 인정' 은 시간벌기用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에 보도된 '북한 핵무기 보유 인정론'은 갈수록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해법 차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원칙은 변함이 없으며,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 모두가 원치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미 정가의 한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 내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간 벌기 차원에서 이 같은 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북한이 1, 2개의 핵무기를 이미 갖고 있는 상황이나 5, 6개를 더 갖는 상황이나 결국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 발언이 바로 이 같은 기류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미국이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금지선(Red Line)' 설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북한이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는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핵 개발을 방치한 뒤 이를 다른 나라나 테러 집단으로 확산시키는 시점으로 할 것인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선임연구원은 "재처리 시설 가동을 금지선으로 보고 영변 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한반도 전쟁상황이 당장 예상된다"면서 "그렇다고 개발을 인정하고 나중에 봉쇄한다는 전략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플루토늄의 경우 손가방으로도 전달이 가능할 정도여서 봉쇄가 쉽지 않고 ▶한반도 주변국들의 도미노 핵무장 사태를 촉발시키고 ▶한반도 차원이 아닌 미국의 안보가 직접 위협받게 되며 ▶북한에 굴복했다는 여론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톰 대슐 상원 민주당 대표는 이날 보도와 관련, "북한의 핵개발을 인정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경고했다.

닉시는 "개인적 판단으로는 부시 행정부는 재처리시설 가동 시점을 군사행동에 들어가는 레드라인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전문가는 "레드라인을 공개할 경우 북한이 현재의 긴장상태를 최악으로 몰고가는 빌미만 제공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하루 빨리 공개적으로 강력히 경고하는 것이 오히려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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