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그의 고독이 나의 고독을 위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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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농담 반 진담 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가수 이적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소설집 『지문사냥꾼』을 펴낸 2005년 무렵이었나. 명문대 졸업생에 진솔하고 사색적인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소설 ‘마저도’ 잘 쓴다는 사실에 왠지 속이 쓰려왔던 기억. 게다가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재능을 가진 이의 까탈스러움 대신 여유와 유머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안다. 이건 잘나가는(것처럼 보이는) 또래에게 느끼는 어떤 질투다.

 지난주 프랑스 파리 출장길, 새로 나온 이적의 5집 앨범을 줄기차게 들었다. 찬바람이 패딩을 파고드는 이국의 겨울이라 더 그랬을까.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하기엔/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것 같네요’라는 ‘고독의 의미’ 첫 소절에 마음이 후드득 내려앉았다. 3년 만에 내놓은 이적의 이번 앨범은 더없이 쓸쓸하다.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라고 읊조리는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부터 그렇다. 다른 노래들에선 ‘청춘’이라 불리기엔 민망해진 나이에 들어선 이의 당혹감이 배어나온다.

이적 5집 앨범 ‘고독의 의미’. [사진 뮤직팜]

 가수의 나이는 마흔. ‘어릴 때는 삶이 아주 길 것 같았지…이젠 두려울 만큼 짧다는 걸’(‘이십 년이 지난 뒤’) 아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혹(不惑)’은 요원한 모양이다. ‘누가 있나요’라는 노래에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삶,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읽힌다. ‘깊은 밤중에 문득 눈을 떠/두근두근대는 가슴 쓸어내리죠/매일 내게 떨어질 버거운 삶의 짐들이 여전히 두려워/잠이 들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래보다 눈물 흘려요’라고 노래한다. 그에게도 ‘욕망은 오랜 병/지겹도록 삶을 갉아먹는 병/아무리 아닌 척 싸매어봐도’(‘병’) 떨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출장에서 돌아와 그의 인터뷰를 읽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는 그는 “가정생활은 행복하다. 그것과 별개로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춘(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런 감성까지 지녔다니 너무해, 라고 질투하기보다 그냥 감사하기로 했다. 나만 아직 어른이 덜 된 건 아니구나, 홀로 허둥대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이 넓은 세상 위를 하루하루/비바람을 맞고 걸어요/혼자서 가는 걸까 외쳐봐요/누가 있나요’(‘누가 있나요’)라고 노래하는 그의 음악 덕분에 조금은 덜 쓸쓸한 겨울이 될 것 같아서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