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무대는 막후로|파리회담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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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은 4월27일 파리 회담재개를 돌연 수락했다가 5일 만에 또 다시 돌연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나 형식적인 주례 회담 중단이 곧 협상으로부터 전면 군사해결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재차 회담 중단은 현재 월남전선에서 처한 고경의 중압을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그 고경에 대처하기 위한 미묘한 외교적 카드·플레이의 한 기교로 볼 수 있다.
작년 12월과 지난 3월 파리 평화회담에서 고자세와 중단으로 일관했던 미국이 공산 측의 군사적 우세가 입증되는 시기에 와서 재차 회담에 응했을 때 미국의 협상고지는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쾅트리·빈딘·중부고원 등이 공산군에 침식당한 뒤 하노이에 의해 DMZ의 존재가 거부당하고 일부 지역에 베트콩의 『임시혁명위원회』가 수립되어 기정사실화의 길을 고집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미국의 주장인 월맹군 철수 선결과 미군 포로 석방 요구가 먹혀들어 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더구나 미군은 월맹 공세에 불구하고 계속 철수하고 있고 미국이 애초에 주장했던 「현장휴전」까지도 만약 합의되는 경우 오히려 미국·사이공에 크게 불리하게 될 형편이다.
때문에 군사적인 형평은 단시일 안의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며 남은 문제는 사이공 정부의 장래 문제. 그에 대치될 과도적인 연정 수립문제가 협상의 관건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공식회담에서는 논란하기 어려운 난제다. 그것은 비밀 회담에서 미국 대표와 레·둑·토 사이에 은밀히 타협할 성질의 문제다.
그래야 터놓고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주례 행사에 불과한 공개회담을 적당한 명분만 있으면 언제라도 중단할 수 있는 여지를 국무성 대변인이 이미 남겨 놓고 있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키신저는 2일 이후 이미 파리에 잠행중이란 강력한 시사가 있으며 레·둑·토 역시 공식 회담에 나오지 않아 무언가 비밀협상의 진행이 암암리에 확신되고 있다. <유근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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