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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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식이 오면 두 가지 중요한 행사가 겹친다. 조상님들 모신 산소 성묘와 나무심기가 왜 한날의 일인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동지가 지나면 극한까지 갔던 밤 길이가 차츰 짧아진다. 그것은 곧 땅속 깊은 곳에서 한 가닥 봄기운이 시작함을 의미한다. 봄은 소리 없이 얼음밑에서 자란다. 그렇게 자라서 동지 후 1백5일되는 날이 한식이다. 그리고 한식 바로 전날이 이름도 싱그러운 청명절이다. 진정코 봄이 온 것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날에 산으로 간다. 언제나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고 어쩌면 저 허허로운 푸른하늘가에 떠들고 있을 영혼들이지만, 그들이 살아서 육신을 가지고있었고 죽어서 이 땅에 묻혔기에 우리는 그들을 만나러 산으로 온다. 죽은 자와 산 자와 함께 봄을 나누는 정경. 멀리 남한강은 아지랑이 속에 자옥한데, 어머니 무덤 앞에서 목청돋우어 곡하는 딸의 울음소리는 뉠리리야 버들피리 소리와 하나되어 아련히 흘러간다.
여기는 죽음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저 좀 몸바꿈해서 지금 여기 안 보이는 것 뿐이다. 우리도 어느 날 입고 있던 무거운 옷을 훌홀이 벗듯이, 그렇게 육신을 벗는 날이 있을 것을.
우리는 또 산에다 나무를 심는다. 우리가 몸바꿈하고 없는 날 그 후에도, 우리를 대신해서 이 산을 지켜줄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는 마음은 신앙과 같다. 미래에 대한 신앙, 자손에 대한 신앙 말이다. 우리들 자손이 저 나무처럼 싱싱하게 미끈하게 자라기를 비는 마음에서 나무를 심는다.
목숨은 줄줄이 줄줄이 이어간다. 과거와 미래가 이 한날에 만나고, 조상과 자손이 이 한 몸에 느껴진다. 이 땅에 삶을 누린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실감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부활절이 여기 한식절과 한 주에 온다. 예수의 죽음의 고난 뒤에 부활절이 온다는 건 동양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천지의 변화와 일치한다. 여기는 자연과 역사가 언제나 하나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오랫동안 겨울을 살아왔다. 언제 진정한 역사의 봄은 찾아 오려는가, 지금은 마치 추위 중에서도 가장 뼈골에 스며드는 노한의 계절, 봄의 발짝소리는 바로 거기 들리는 듯한데 우리의 어려움은 극도에 달했다.
우리는 이 어려움 속에서도 봄을 기다린다. 봄을 대비한다. 언젠가 이 땅에도 반드시 찾아올 화창한 역사의 봄을 .위해 우리는 한식에도 산으로 간다. 조상을 만나서 묵은 회포를 풀고, 자손을 생각하며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간다. 만물이 부활하는 소리는 저 맑은 시냇물 소리가 아닌가 저 산새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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