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월남이 쟁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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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닉슨」대통령의 새로운 8개 항목 평화안과 「키신저」의 막후협상경위가 밝혀짐으로써 월남전현상의 가장 큰 문젯점과 미국과 「사이공」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최후의 선이 드러났다.
그동안 막연하게 짐작된 대로 월남전협상의 열쇠는 휴전이나 철군문제가 아니라, 월남(사이공)의 정치적 장래, 다시 말하면 포스트월남전을 누가 집권할 것이냐로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69년8월4일이래 「하노이」측 대표들과 만난 결과 「하노이」측 요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키신저」는 휴전문제 같은 것은 월남의 정치적 장래 같은데에 합의만 이루어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하노이」측이 간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신저」에 따르면 71년6월26일, 공산측은 9개 항목 평화안을 제안, 군사·정치문제를 한데 묶어 인지문제 전체를 한꺼번에 해결하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주 후 공산측은 다시 7개항 평화제의를 제시, 월남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보장을 중점적으로 강조했다.
이것은 공산측이 평화협상에서 「티우」정권을 해체하는 데로 주력할 방침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같은 해 8월16일, 10월11일 두 번에 걸쳐 8개항 제안을 했다고 「키신저」는 밝혔다.
여기서 미국은 이미 미군철수기한을 휴전협정이후 9개월에서 6개월로 양보하고 「티우」정권 퇴진에도 동의했다.
그런데도 공산측은 지난해 11월부터 파리회담을 지연시키면서 협상을 교착상태로 몰고 갔다. 이러한 태도에 대한 「키신저」의 해석을 지금 와서 공산측은 연합군 철수 후에라도 미국원조가 계속되는 한 자기들 힘으로는 「티우」정권타도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아예 미국이 「티우」를 추방하도록 하려는 속셈인 것 같다는 것이다. 「닉슨」계획에 대한 「하노이」의 첫 공식반응도 「티우」정부의 우선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보아 「키신저」의 해석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닉슨」이 말하는 합의가 이루어져 「티우」가 물러나고 「베트콩」도 참가하는 선거가 실시된다고 해도 과도기의 월남을 상원의장이 다스리게 한다는 닉슨-티우 구상을 월맹 또는 베트콩이 선뜻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닉슨」이 지금 8개항 평화계획을 발표하고 그간의 비밀협상경위를 모조리 공개한 시기선택에 대해 여러 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다.
「헨리·잭슨」 민주당 대통령출마후보 같은 사람은 「닉슨」이 이번 발표를 북경 방문 직전으로 시기를 맞춘 것은 중공이 하노이에 압력을 작용해주도록 지원을 얻기 위한 월남전처리를 위한 최대한의 성의표시 「제스처」로 해석했다.
한편 「에드워드·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은 하필 이시기에 발표한 것은 11월의 재선전략의 일환으로, 선거쟁점의 하나인 포로석방문제에서 민주당의 공격을 무력화하려는 정치적 야심의 결과라고 명했다.
아닌게아니라 그동안 특히 민주당의 「조지·맥거번」같은 비둘기파 후보들은 「닉슨」이 한번도 철군일자를 명시한바 없다고 비난, 미군포로 석방문제와 관련, 수세에 몰린 「닉슨」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그래서 지난해 5월31일 「키신저」가 처음으로 일방적 철군일자를 제시할 용의가 있다고 월맹 측에 제안했다는 것을 밝힌 사실은 민주당 측의 공격을 거세하기 위한 정치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닉슨」이 이같이 비밀협상을 공개협상으로 바꾸어 민주당후보들과 「하노이」의 입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켰다고 해도 「닉슨」평화안이 포로석방, 미군완전철수, 휴전 등의 구체적 성과로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그로 인한 부담은 오는 11월 선거에서 고스란히 「닉슨」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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