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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정책 추진 94%가 녹색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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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

‘10월 말 현재 녹색등 132개, 노란등 8개’.

 지난 8일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보도자료 ‘국정과제 신호등 현황’의 주요 내용이다. 박근혜정부의 140개 국정과제 중 132개는 ‘당초 계획된 일정대로 큰 문제 없이 추진 중’이며, 8개는 ‘과제 추진이 지연되거나 대형사건·사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해 문제 해결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란다. 현 정부 국정과제의 94% 이상이 문제없다는 자체 평가다. 과연 그럴까. 국민은 과연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에 5% 남짓의 문제만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이번에 노란등이 새로 켜진 분야는 ‘세종시 조기 정착’과 차기 전투기 기종 확정이 무산된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 두 가지다. 기존 노란등은 ‘청년 취·창업 활성화 및 해외진출 지원’ ‘주거안정 대책 강화’ ‘항공해양 등 교통안전 선진화’ ‘원자력 안전관리체계 구축’ ‘에너지공급시설 안전관리’ ‘공공갈등 관리시스템 강화’ 등 6개다. 누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노란등이다.

 하지만 녹색등 132개는 진짜 녹색일까. ‘부동산 시장 안정화’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적 대응’ ‘안정적 세입기반 확충’ ‘건전재정 기조 정착’ ‘교통체계·해운 선진화’ ‘농림축산업의 미래성장 산업화’…. 언뜻 봐도 풀리기는커녕 난맥상으로 얽힌 문제투성이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국무조정실은 올해 4월 국정과제 추진·이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종합관리하기 위한 신호등 체제를 마련했다. 지난 7월 첫 중간점검 결과 녹색등 131개, 노란등 9개가 떴다. 당시 신호등 색깔의 의미를 ‘녹색등은 정상 추진, 노란등은 관심 필요, 빨간등은 과제 재검토 필요 시 점등’이라고 설명했다. ‘노란등은 국민 눈높이에서 미흡한 경우 점등하게 됨’이라는 부가 설명도 붙였다.

 그리고 4개월 가까이 흐른 지난 8일 노란등은 기존 9개에서 8개로 줄었다. 끊이지 않는 여야 정쟁 속에 민생법안 입법이 표류하고, 동양 사태로 투자자들이 울부짖는 것은 딴 나라 얘기인지. 최근 대통령과 총리·부총리가 한목소리로 외친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 102개가 국회에서 발목 잡혀 경제 활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또 뭔가.

 국무조정실이 각 부처의 국정과제 추진을 독려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정 난맥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신호등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국무조정실은 “현재 운영 중인 ‘신호등 체계’는 국정과제 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성과 평가와는 다르며 정책홍보 수단이 아니다”고 말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변명이다. 신호등을 켜려면 제대로 켜든지 아니면 거둘 일이다.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