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없애는 전쟁 당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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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로 인해 자기 땅에 피가 흐른 나라가 있으면 전쟁을 반대하라."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아랍 형제국들에 대한 쿠웨이트인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쿠웨이트의 겨울 관습에 따라 남부 사막에 텐트 '비하르'를 쳐놓고 가족.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알 갈라프 하마다(48.초등학교 교사)는 12년 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한다.

쿠웨이트에 총을 든 이라크군이 나타나고 며칠 뒤 당시 26.27세였던 동생 후세인과 포지가 행방불명된 것이다. 가족들은 시체 안치소까지 찾아가며 미친 듯이 이들을 찾았다.

실종 4개월 만에 행방이 알려졌다.이라크에서 돌아온 사람이 "동생들이 바그다드에 끌려와 있다"고 전한 것이다. 그러나 소식은 그걸로 끝이었다.

1991년 이라크의 침공 이후 행방불명된 6백50명의 쿠웨이트인 가족 중 한 명인 그는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없애는 전쟁에 반대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생 모하메드(40.통신부 공무원)는 "우릴 도와준 나라는 미국이다. 이슬람 국가는 말만 앞세울 뿐 못 믿겠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자식.형제.친척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상처를 안고 있는 쿠웨이트 사람들의 대부분은 후세인 제거를 위해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텍사코.마이크로 소프트 등 굵직한 서방회사의 대행사인 '알 사가'의 와엘(56) 회장은 "국민을 살육한 후세인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피 속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투르키(30.보건부 공무원)도 "전쟁은 싫지만 후세인 제거엔 찬성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웨이트에서 가장 번화한 알 샤림 쇼핑몰에서 지난 1일 친구들과 장난을 하고 있던 고등학생 파하드 무바라크(17)는 "전쟁은 해야 한다"며 주먹을 흔들었다. 이라크의 침공 당시 서른한살이던 그의 큰형은 길거리에서 사살됐고, 작은 형과 두 누나는 실종됐다.

쿠웨이트인들에게 '반전 목소리가 높은데 쿠웨이트만 이라크를 치라고 미국에 땅을 내주는 게 부끄럽지 않으냐'고 자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후세인을 제거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12년 전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인에게 퍼부은 총탄은 저주의 화살로 변해 사막 건너 이라크로 향하고 있다.

안성규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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