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도 너무한 수박 겉핥기식 국회 법안 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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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거 범죄를 국민참여재판 대상에 포함시킨 과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입법 작업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회의 법안 심사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나꼼수(나는 꼼수다)’와 시인 안도현씨의 선거법 사건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하자 국회에선 “왜 그런 사건을 참여재판에 회부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작 선거법 사건을 참여재판 대상에 집어넣은 것은 국회였다. 2011년 말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참여재판법)’ 개정을 통해 대상을 지방법원 합의부 관할 사건으로 확대한 것이다. 본지가 국회 속기록 등을 확인한 결과 당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법원 측 의견을 받아들여 10여 분 만에 이렇게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등 개별 범죄가 참여재판 대상으로 적합한지 여부는 따져보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다루는 과정이다. 따라서 관련 법안은 대단히 신중하게 심사해야 한다. 특히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재판에 손을 댈 때는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일 필요가 있다. 강도나 살인과 달리 정치적 사건은 배심원들의 성향과 재판 분위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선거법 위반 사건을 둘러싼 시비는 이런 부분들이 깊이 논의되지 않은 탓이 크다. 문제는 부실 심사가 과연 참여재판법뿐이겠느냐는 데 있다. 여야가 정치 공방에 치중하면서 각 상임위의 주요 법안 심사는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돼 온 게 현실이다.

 국회는 법안 심사를 강화할 수 있는 대책부터 강구해야 한다. 의원들의 심사가 충실할수록 국민이 누리는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검사의 신청에 의해 재판부 직권으로 참여재판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참여재판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중이다. 참여재판이 국민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번엔 제대로 심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