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증거와 씨름, 과학수사 귀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13년 간 독보적 과학수사로 500곳 이상의 현장 감식에 출동한 신강일 경사.

지난 1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현장에 출동한 충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신강일(46) 경사는 주방에서 온몸에 둔기를 맞고 숨진 한모(74)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식기부터 식탁, 의자까지 사건 현장은 이상하리만큼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런 가운데 유독 성인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만이 뚜렷하게 눈에 띄었다. 신 경사는 그 증거가 ‘위장된 증거’임을 직감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증거 대신 시신 주변 깔끔하게 정리된 집기들을 철저하게 검사했다. 주방 천정 식기함에 있던 두루마리 비닐 안쪽에서 희미한 혈흔 자국이 발견됐다. 지문 감식을 통해 검거한 범인은 성인 남성이 아닌 30대 여성.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은 그렇게 해결됐다.

 신 경사가 과학수사에 처음 발을 디딘 건 1999년. 당시엔 과학수사에 대한 주목도가 지금보다 떨어져 주위에서 “더 힘 있는 분야가 더 많은데 왜 하필 과학수사냐”는 핀잔도 여러번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독보적인 과학수사 요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동안 신 경사가 실시한 현장 감식만 500곳이 넘는다. 전국 최초로 현장감식, 법 최면 수사, 강력범죄 등 3개 분야에서 전문수사관 인증도 받았다. 지난 6월엔 과테말라를 2주간 방문해 현지 경찰과 과학수사관들에게 국내 과학수사 기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CSI 등 과학수사를 주제로 한 영화나 작품을 즐겨본다는 신 경사는 “과학수사는 드라마처럼 몇몇 주인공이나 영웅들의 업적이 아니다”고 했다. “현장 감식부터 증거 분석까지, 사건 하나에 수십 명의 동료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매달립니다.” 13년을 증거와 씨름하며 살았다는 그는 “과학수사는 꽁꽁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 진범을 찾고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한 인권을 찾아주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4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리는 ‘65주년 과학수사의 날’ 기념행사에서 신 경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마약분석과에 ‘과학수사 대상’을 수여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