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에 의한 한국문제 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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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공방문이 국제평화와 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것을 희망한다』던 종래 입장에서 진일보하여 이를 「환영」하기로 기본방침을 세웠음이 29일 밝혀졌다.
김용식 외무부장관에 의해 밝혀진 이와같은 정부의 방침은 그러나 단순히 낙관적인 평화에의 기대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태진전에 대한 더 한층 심화된 경계의 의도가 포함돼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김장관은 앞으로 열릴 미·중공 정상회담에서 한국문제가 다루어진다면, 이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만큼, 앞으로 미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이 문제를 단계적으로 협조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특히 미·중공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할 경우, 미국은 당연히 한국과 사전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며, 그들이 이러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인 흥정대상으로 한국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극 반대한다고, 우리 정부측의 확고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김외무도 지적하고 있듯이, 앞으로 미·중공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그들의 의제 속에 한반도의 문제가 포함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미 중공은 미·중공간 국교 정상화의 네가지 전제조건 중에 한국문제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여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미국 역시 그들의 대중공 접근노력이 『대화를 통한 「아시아」의 전반적 문제의 타결을 의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바 있음을 상기할 것이다. 따라서 미·중공간의 접촉은 필시 한국의 국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토론점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큰 나라간의 외교에 있어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자칫 손해를 보거나 희생을 당한 일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하였거니와, 이 사정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별로 변함이 없는 것으로 돼 있다. 바로 이 점이 우리 정부가 미·중공간의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더 한층 또렷한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 소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누차 한국문제에 관련해서 강대국간의 일방적 흥정을 배격하고 미·중공간의 접촉에 있어서도 우리의 국익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사전에 한·미 양국의 충분한 의견교환과 공고한 공동보조를 촉구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사전협의라 함은 종래 흔히 그랬던 것처럼 이미 기정사실화한 일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불과 수시간, 또는 수일 전에 사전통고하는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충분한 토론과 절충을 거듭한 끝에 얻어지는 사전합의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사에 어긋나게, 우리의 역사가 강대국의 일방적 결정으로 마구 짓밟혔던 사실은 우리역사를 되돌아 볼 때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미국도 그와같은 일방적 결정의 책임을 오늘날까지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되풀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당사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강대국의 눈에 바람직하게 보였던 일치고서 긴 안목에서 볼 때 역사의 후환이 아니된 것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야말로 우리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대미외교에 집주해야 할 절박한 과제를 국민은 의식할 때이다.
「닉슨」은 자신의 중공방문 조처가 결코 옛 우방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이지만 우리는 그의 이러한 언약을 믿으면서도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튼튼하고도 탄력있는 외교로써 미·중공 접근에 대처해야 하며, 그 결과가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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