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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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에 내무부의 실무진에서는 주민세의 신설을 검토 중에 있다고 보도되었다. 꼭 양두구육과도 같은 얘기처럼 들린다. 밖으로는 양 대가리를 내걸어 양고기를 파는 체 하면서 실제로는 개고기를 파는 형국을 양두구육이라 한다.
후한 광무제의 말이지만 비슷한 뜻으로 도척이 공자처럼 말한다는 표현도 있다. 도척은 춘추시대의 유명한 도둑이다. 그는 스스로 강도 하러 들어 갈 때 「용」이 제일 먼저 들어가고, 「의」가 제일 나중에 나온다고 큰 소리쳤다.
맹자에도 양으로써 소(우)에 대신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 날 제나라 선왕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소 대신에 양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 얘기를 듣곤 맹자는 측은해 하는 의왕의 마음씨는 곱지만 양을 죽이나 소를 죽이나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죽이는 게 안됐다면 아무 것도 죽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양을 죽이게 한 왕을 백성들이 잔인하다고 흉보기는 마찬가지라고 풀이했다. 할 일이 없어서, 상부의 지시도 없는데 실무진에서 주민세의 신설을 검토할 이는 없다.
사실은 주민세가 아니라 지역계발세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뭐라 둘러대도 결국은 같은 얘기다.
물론 지난 선거 이후 지방세원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갑류 농지세가 전면 폐지되고 을류 농지세의 면세점이 인상됐기 때문이다.
그것을 뭣으로 든 메우지 않고서는 세수 결함이 생기리라는 것쯤은 몰랐을 턱도 없다. 그러니 농지세 감면의 혜택을 받는 농민의 75%가 다시 과세 대상이 되는 주민세의 신설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초에 농지세는 왜 폐지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주민세란 꼭 10년 전에 있었던 호별세가 되살아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같은 개고기를 어느 때엔 양고기라 팔았다가 또 어느 때엔 개고기라 팔았다가 했다는 것뿐이다.
하기야 누구에게나 납세의 의무는 있다. 농민이라고 여유가 있는데도 면세한다는 것은 얘기가 안 된다. 다만 자꾸만 새로운 세목을 생각해내는 것이 국민은 얼마든지 쥐어짤 수 있다고 보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염려될 뿐이다. 세원을 먼저 살핀 다음에 여기에 맞는 예산을 짜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그보다도 아리송한 것은 아직 주민세의 부과가 결정단계에 있다는 건 아니라고 하는 발뺌이다.
호별세를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또 뭐라 할지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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