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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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레어드」발언은 즉각 「애치슨」성명과 비유되고 있다. 지난 22일 미 국방장관 「레어드」는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 지상군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미 상원 세출위 외원 소위의 증언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애치슨」성명은 1950년 1월 12일 미국기자 「클럽」에서 행한 연설을 말한다. 당시 「애치슨」은 미 국무장관이었다. 그는 『태평양에 있어서의 미국 방위선은 「얼류션」제도로부터 일본류구열도를 거쳐 「필리핀」에 이른다』고 말했다. 분명 이 선상엔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논조로 보면 「레어드」발언은 제2의 「애치슨」성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양자가 모두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관심권에서 한반도를 제외하고있는 점이 공통되어있다.
그러나 후세의 정치학자들은 「애치슨」성명에 대해 전혀 새로운 평가들을 내리고 있다. 우선 그의 발언은 미국의 군사적 안보에 관한 성명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전문 5천 1백여 단어중 문제의 발언부분은 1백 50단어를 넘지 못한다. 「애치슨」의 관심은 『그 방위선을 어떻게 긋느냐』보다는 더 큰 문제에 있었다. 그는 태평양지역국가들과 미국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럼 왜 「애치슨」성명은 한국동란의 촉발제로 평가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 정치학자는 그 수수께끼를 이렇게 풀어준다. 첫째는 「애치슨」의 정적들이 한국전의 책임을 「애치슨」 개인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미국을 전통적으로 지배해온 「옴니퍼턴스」의식에 「애치슨」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이다.
「옴니퍼턴스」(omnipotence)란, 「전능」·「무한력」을 의미한다. 미 국민들은 건국이래 대외관계에 관한 한, 미국의 정책은 완전무결하다는 「옴니퍼턴스」의 신념을 찾고 있다. 이런 심리상태는 정책적 과실에 대한 국가적 자백을 불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녀온 국가적 우월감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과 편견은 결국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국가로부터 개인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알리·히스」사건을 그 실례로 지적한다. 중국대륙을 공산주의자들에 빼앗기게 된 것은 미국정부의 실책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의 반역적 「스파이」들에게 있다는 주장-.
「애치슨」성명은 이런 관점에선 하나의 좋은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다. 「오산」에 의한 전쟁으로 터무니없이 피를 흘러야했던 그 비극에 대한 감회는 새삼 무량하다. 그러나 「오산」을 자아내게 한 그「앰비규어티」(모호성)에는 더 큰 책임이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이다. 「레어드」 발언이 제2의 「애치슨」 성명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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