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 보여주는 '심장 소리의 아카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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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리는 장소는 섬 12개와 항구 2곳이다. 12개 섬 중에서 나오시마·데시마·쇼도시마를 방문했다. 데시마와 쇼도시마에서 관람한 작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 개를 소개한다.

데시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심장 소리의 아카이브’였다. 전 세계인의 심장 소리를 녹음해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캄캄한 복도 같은 공간에 들어서니 쿵쿵쿵쿵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심장박동 소리에 맞춰 허공에 매달린 백열등에 불이 들어왔다. 심장 소리가 크면 불빛이 환해졌고 소리가 작으면 불빛도 약해졌다. 이달 초순 방문했을 때 전 세계에서 3만7466명의 심장 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이 중에는 한국인 388명도 있었다. 자신의 심장 소리를 녹음하고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심장 소리를 녹음한 뒤, 깜빡이는 전등과 함께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엄마의 자궁이 떠올랐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쇼도시마(小豆島)에는 일본의 유명 연예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의 작품도 있었다. 겐지 야노베와 공동 작업한 ‘바닥으로부터의 분노’(사진)라는 설치 작품이었다. 마을 공터에 우물 같은 작품이 설치돼 있고 이 우물에서 한 시간마다 괴물 모양의 설치물이 올라온다. 괴물의 입에서는 물이 질질 흘러내린다. 원래 이 자리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매립됐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겐지 야노베가 무분별한 지역 개발을 비판하며 작품을 설치했다.

옛날 간장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에는 작은 간장병 8만 개가 농도에 따라 한쪽 벽면에 전시돼 있었다. 특유의 간장 냄새가 진동하긴 했지만, 여느 현대미술 작품 못지않은 장면을 연출했다. 동네 주민 350명이 작가와 함께 한 달간 작업한 결과였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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