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체 채무자 카드사 골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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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카드사들이 최근 갚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법 규정과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제도 등을 핑계삼아 빚 갚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얌체 채무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3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금융권에 만연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카드 사용에 따른 연체율과 신용불량자 등록자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카드사별로 '얌체 채무자'들이 늘면서 정상적으로 빚을 갚으려는 채무자들까지 책임의식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재산이 있는 데도 가족 명의로 빼돌리거나 '배째라식'으로 버티는 유형.

A카드사에 따르면 1천여만원을 7개월 이상 연체한 B씨는 카드사의 채무 독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직전 집을 포함한 전 재산 명의를 부인 이름으로 바꿔 등기까지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C카드사 관계자는 "한 채무자는 카드사 채권 추심담당 직원의 욕설을 유도해 이를 녹음하는 방법으로 담당 직원의 약점을 잡은 뒤 카드사를 금융당국에 고발하겠다며 채무 탕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D카드사 관계자는 "재산을 숨기는 것은 고전적이고 그나마 순진한 채무자"라면서 "어떤 채무자는 '대구 방화사건도 못 봤느냐'며 노골적으로 협박해 채권 추심담당자가 기겁하고 도망친 일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에는 "나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뒤 개인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서 부채 탕감을 받을테니 상관말라"거나 "앞으로 통합 도산법에 개인파산 관련 규정이 신설되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프로급 얌체 채무자'도 생겨났다고 한다.

지나치게 포괄적인 감독 규정이 '무책임한 채무자'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7월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금융회사가 채권 회수를 할 때 '채무자와 관계인(가족 등)의 사생활과 업무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이로 인해 E카드사의 경우 1천만원의 빚을 지고 잠적한 아들을 신용불량자에서 빼내기 위해 부모가 돈을 들고 카드사를 찾아왔는데도 규정(본인 외에 채무사실 고지 금지) 때문에 카드사가 돈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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