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천인 침 만들기 등으로 허송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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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교시절은 인생 행로에서 가장 부담 없이 자기발전을 꾀할 수 있는 황금시대라고도 할 수 있거늘 우리는 불행하게도 일제 말엽의 전쟁 막바지에 고교 시절을 보낸지라 이를테면 손해를 많이 본 셈이다. 학교 안에서 군복도 만들고 운모도 쪼개고 농장에 가서 뙤약볕에 김도 매고 추수도 하는 등 바빴다.
그런가 하면 신사참배·군사훈련(여학생이지만 학도호국 대를 편성하여 훈련받았다)등에 보낸 시간도 그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 힘들고 심지어는 군인들의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센닝바리」(천인침)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 내외에서 허송한 시간만도 부지기수다.
이 모든 시간을 합하여 더욱 학업에 열중하고 과학 실험도 하고 책도 읽고 정서교육도 받았더라면 얼마나 더 폭넓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는지 모르련만 아까운 시절을 군국주의의 제물로 지낸 것이 억울하다.
한가지 즐거운 추억으로 수놓아진 경험이 있었다면 그것은 금강산 여행이었다. 해방과 더불어38선이 막히고 보니 그때 금강산을 보아둔 것이 다행이었다고 여겨지며 하루바삐 남북통일이 이루어져 모든 고교생이 자유롭게 금강산에 드나들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주정일(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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