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복덕방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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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들이 고객의 부동산 매매를 연결해 주거나 관리를 대행하는 등 부동산 관련 서비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물가인상과 세금을 감안한 실질 예금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예금 상품을 추천하는 것만으로는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출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서비스 제공의 대가로 약간의 수수료를 받지만 그보다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확실한 자기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서비스는 일반 고객이 아닌 은행에 수억원 이상을 맡긴 프라이빗뱅킹(PB)이나 최고급(VIP) 고객에게 집중적으로 제공된다.

◇은행이 '복덕방'=공직에서 은퇴한 李모씨는 최근 신한은행을 통해 땅을 팔아 큰 이익을 봤다. 부동산업자가 평당 1천4백만원 정도 받아주겠다고 한 것을 은행이 자세한 시장조사를 해본 뒤 평당 1천8백만원에 팔아줬기 때문이다.

은행측은 중개 수수료를 법에서 정한 0.9%만 받고 웃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李씨는 감사의 뜻으로 땅을 팔고 받은 돈 80억원을 고스란히 이 은행에 맡겼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대부분 PB팀을 통해 고객들의 부동산을 팔아주거나 투자할 만한 부동산을 추천하는 '복덕방' 업무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은행과 부동산 전문 업체간의 제휴도 활발하다.

신한.외환은행은 부동산써브, 우리은행은 부동산뱅크, 국민은행은 유니에셋.코아셋 등과 손을 잡고 전문 업체들이 보유한 투자 정보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관리도 대행=은행들은 건물의 청소.경비 등 관리업무를 대행하거나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대신 받아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부동산 관리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은행이 대신하고 수수료를 받는 부동산신탁 상품인 '하나 리얼티 클럽'을 최근 시판했다.

이 상품은 삼성에버랜드 등 전문업체와 손잡고 월 임대료 1천만원 이상인 건물에 대해 임대차 계약에서부터 리모델링.하자보수 등까지 은행이 맡아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고객은 신탁한 부동산에 대해 사실상 아무 것도 신경쓸 것이 없다고 은행측은 설명했다.

하나은행 부동산금융팀 이원주 과장은 "VIP 고객들은 대부분 재산의 60%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어 부동산을 빼놓고는 종합적인 재산관리가 불가능하다"며 "예금금리 하락과 맞물려 부동산 관련 서비스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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