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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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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자주 한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제발 술 많이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하렴.”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사는 거니?” “언제쯤 며느리를 보여줄 거야?” “나야말로 절대 할머니처럼 늙지는 않을 것 같지 않니?” 어머니의 질문 공세에 나는 애매하고 불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

 이따금 한국 친구들은 내가 내 어머니가 하는 좋은 의도의 잔소리를 들어주는 것에 놀라워한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가 마치 한국 어머니 같다는 소리를 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간단히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어머니도 다른 모든 어머니와 똑같아.” 내가 겪은 바로는 한국 어머니와 영국 어머니의 유일한 차이는 어른이 된 자식들이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다. 솔직히 말해 나는 ‘효도’라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최근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술집을 열었다. 훌륭한 한국 어머니처럼 우리 어머니도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한다. 어머니 말씀은 서울에서 내 주변에 있는 꽤 많은 사람이 하는 것과 같았다. 왜 ‘배울 만큼 배운’(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 내가 그리 말한 건 아니다) 사람이 술이나 팔고 있니?

 그 뒤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줬다. 나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손님으로 꽉 찬 술집을 목격했다. 나와 동료는 현재 2개의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2개를 더 낼 계획이다. 우리의 작은 취미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영세한 술집 수준에서 벗어나 사업으로 발전했다. 그랬는데도 나는 아직도 서울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남들이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장’을 왜 그만뒀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휴대전화 인터넷 사업을 하는 친구가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 명함을 주면 사람들은 ‘이게 뭐죠?’라고 말한다. 속뜻은 ‘너는 삼성이나 현대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했잖아’라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내 친구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도 그렇다. 이 나라는 변하고 있다. 믿을 만한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고 아파트를 사고 안정된 직장의 우산 아래 내내 행복하게 살면 부동산 가격도 오르는 오래된 삶의 유형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많은 똑똑한 젊은이가 안정에 대한 단순한 환상에 맞서고 있다. 오늘날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간 유형은 자영업자다.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기꺼이 체면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수없이 찾아올 것이다. (외국 출신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 소비자의 취향은 명백히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자리 잡은 거인들이 아닌 순수한 열정과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새내기들에게 유익한 상황이다.

 우리가 처음 가게를 시작한 동네(서울 경리단 주변)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존재할 수 없었던 자그마한 태국 음식점들, 수공예품 가게들, 시가 바들, 그리고 펑키 스타일의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 가게들을 시작한,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젊은이들은 깜짝 놀랄 만한 다채로운 배경을 지녔으며 모두 ‘자수성가형’ 감수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사업을 잘하고 있다. 비슷한 일이 서울 효자동과 서촌 같은 지역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 대학 친구의 대부분은 은행이나 일반 기업에서 일한다. 한 친구는 이탈리아로 떠나 그곳에서 웨이터와 소믈리에를 거쳐 셰프가 됐다. 그는 결국 어떻게 최고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탈리아 식당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대중적이다. 진짜 이탈리아의 맛을 내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이나 영국 모두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자기 소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장사를 잘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기 위해 체면을 포기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할 특별한 자격은 없다. 하지만 만일 젊은 한국 친구가 내게 장래 선택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추천하겠다. 체면에 대한 획일적인 생각을 버리고 발전하는 천재적 틈새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