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의 정치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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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노총 중앙 위원회는 노총의 정치 활동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노총과 현재 그 산하에 설치되어 있는 각 시·도 협의회 및 지구 협의회 단위로 「정치 교육 위원회」를 두기로 의결하고, 오는 3월10일까지 이를 위한 인선을 끝내 곧 정치 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한다.
이 회의 목적은 노동자의 정치적 요구 실현을 위해 노조의 정치 교육을 효과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노동자의 정치 역량을 배양하고 정치 세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풀이되고 있다 한다.
한편, 이와 아울러서 노총 중앙위는 현행법 중 노조의 정치 활동을 규제하는 모든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입법 활동도 추진키로 했다 한다.
노조의 집결체인 노총이 노조의 정치 교육을 효과적으로 시행하여 노동자의 정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목적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이론이 없을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노조의 효과적인 정치 교육 실시는 노동자의 정치 의식 수준을 높이고 노동자나 노조의 정치 역량을 강화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총이 정치 교육을 실시하는데, 하필이면 총선을 목전에 둔 이 시점을 택하느냐 하는 동기에 대해서는 자칫 의혹을 사기 쉽고, 또 이러한 정치 교육 실시가 특정 정당, 혹은 입후보자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겠는가 하는 점에 미묘한 문제성이 있다 할 것이다.
우리 사회 노조나 노총은 과거부터 자주적인 압력 단체 구실은 못하면서 십중팔구는 어용기관으로 타한 일이 많았었다는 것을 세인이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노총이 총선거를 목전에 두고 급작스럽게 정치 교육을 서두르겠다는 것은 행여 이런 어용화 경향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기 쉬울 것이다.
최용수 노총 위원장은 정치 교육 위원회가 앞으로 있을 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구애됨이 없이 각 정당이나 정치인의 정강이나 정치 활동을 평가 분석하고 『근로자들의 이익을 가장 충실히 대변해 줄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도록 근로자를 교육시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는데, 이런 판단력의 함양이 은연중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지지, 또는 반대를 시사하는 방향으로 흘러 일종의 음성적인 선거 운동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최 위원장은 상기한 정치적 판단력을 양성하는 교육이 직접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므로 하등 법에 저촉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 처사가 현행법에 저촉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먼저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의 유권적 해석이 있어야할 것이다.
노조나 노총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현행법 조문의 삭제 주장도 우리 사회 정치 현실로 보아 그것이 근로자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은 거의 없다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조가 독자적인 정당을 형성할 이만큼 정치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노조나 노총이 단체적인 정치 활동을 가지고 특정 정당 내지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때문에 노조나 노총은 심각한 분열을 일으킬 위험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정치 활동 금지는 노조원이 개인적 입장에서도 특정 정당 내지 정치인에 대한지지 표명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총 간부들은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총선을 앞두고 노조를 음성적으로, 혹은 양성적으로 정치화하려는 책동을 벌임으로써 세인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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