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역할은 100인 100색 … 정답이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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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사진 라희찬(STUDIO 706)]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등 우리 시대 흔들리는 가족 문제를 다루며 주목을 받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51) 감독. 그가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들고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렇게…’의 키워드도 가족이다. 감독은 6년 전 출산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가족이 서로 교류하면서 겪는 감정의 미묘한 변화에 집중한다. 매사에 자신만만한 중산층 가장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시점을 유지하면서 과연 아버지란 뭔지, 부모자식이란 어떤 관계인지를 예리하게 질문한다. 고레에다 감독을 5일 부산에서 만났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 영화는 12월쯤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 6년 동안 기른 아들과 친아들 중에 누굴 키울지, 쉽지 않은 고민 끝에 주인공의 생각이 바뀌는데.

 “그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핏줄과 시간 중에 어떤 게 더 힘이 센 지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랐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던 관객이든 그 생각이 흔들렸으면 좋겠다.”

 - 아이가 바뀐 두 가족은 사는 처지도,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그 중 주인공은 성공한 직장인이자 아이에게 엄격한 아버지다. 그 역시 다정다감하지 않은 아버지를 둔 걸로 그려지는데.

 “내 아버지도 감정 표현에 많이 서툰 분이셨다. ‘나이를 먹으면 부모를 닮아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서웠다.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될까 봐. 한데 나이 먹고 내가 아버지가 돼보니 어릴 적 봤던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표현을 못하셨을 뿐 사실 나를 사랑하셨다는 걸 깨달았다.”

 - 반면 상대 가족의 아버지는 아이들과 친화력이 뛰어나다.

 “이 영화로 관객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100명의 남자가 있다면 그들은 각자 다 다른 100명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개인적으로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 등장인물들이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데, 그 담담한 모습에서 오히려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드라마를 느끼게 된다.

 “내 영화가 펑펑 우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게 싫다. 인물들이 미소를 지어도 슬픔이 드러나길 바랐다.”

 - 당신도 감정을 안 드러내는 편인가.

 “아버지를 닮았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늘 내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말 좀 하라고 하셨다(웃음).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 등장인물 중 악인도, 선인도 없는데.

 “흔히 저 사람이 내 편인지 적인지, 내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 판단하는 게 살기 편하다. 그래야 출세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영화에 악역이나 영웅을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알기 쉬워지고, 감독도 편하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지 않나. 내 영화에는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들만 그리고 싶다.”

 - 아역들이 이전에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데도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다.

 “연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었다면 이런 연기를 못했을 것 같다. 오디션 때부터 아이들에게 어떤 영화인지 알려주는 대신 이 사람이 네 아빠라고 생각하고, 아빠가 이렇게 말하니까 네 대사를 해보라고 한다. 그 아이들만이 쓰는 표현을 듣고 대사에 반영하기도 하고.”

부산=장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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